레히삼

[레히삼/쬬윱] 쇼윈도

브리아나 2017. 11. 25. 22:22

레히삼 전력 주제: 거짓말







 정계와 재계가 유착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듯이, 유가와 조가에서 자식들을 맺어주기로 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국회의원만 5선, 금뱃지 한 번 질리게 달아보았고 당의 대표까지 맡아 본 유 의원은 끝내 제 대에서는 이루지 못한 대선 출마라는 대업을 그의 장자에게 맡겼다. 제 대에서 이루지 못한 것은 한이나, 듬직한 첫째 아들 유장은 아버지의 소망을 넉넉히 풀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젊은데도 그의 감각은 아주 좋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화술과 처세술은 가끔 아비를 놀라게도 했다. 어렸을 적에는 사춘기를 심하게 겪어 반항을 하며 아버지에게 대들고 싸움을 걸어 골머리를 앓았지만 결국 그는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걸었다. 덕분에 유 의원은 제 살아 생전에는 못 본다 해도 언젠가 나중에는 교과서에 제 아들의 이름이 꼭 대통령으로 실리리라고 확신했다. 이 만족스러운 자식 농사에서 단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그에겐 아들이 둘 있다는 거였다. 

 둘째 아들까지 노련한 정치인이 되었다면 형의 뒤를 듬직하게 밀어줄 수 있었을 테니 한이 없겠건만, 아쉽게도 둘째 유진은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여기저기에 일부러 눈도장을 찍는다거나 선물과 돈을 적절하게 쓰는 것, 동맹을 맺었다가 등을 돌렸다가 하며 머리를 굴려 계책을 짜내는 것은 유진이 잘하는 일이 아니었다. 유 의원은 언제나 그것이 조금의 불만이었으나 아들에게 불만이 있느냐고 한다면, 그건 전혀 아니었다. 사실 그가 더 예뻐하는 것은 둘째였으니까. 

 저를 쏙 빼닮은 유장과 달리 제 어미를 더 빼닮은 유진은 천성이 착하고 밝았다. 아직 철이 없어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것이나,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면 의심조차 하지 않고서 믿어버리는 건 정치를 하기에는 좋지 않은 성격이었지만 사랑받기에는 더 없이 좋은 성격이었다. 그가 보기엔 모자람이 많은 성격이었어도 어쨌든 아비는 막내 아들을 아꼈다. 아들 녀석이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난데없이 연예인이 하고 싶다고 졸랐던 것을 들어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정치를 하지 않을 거면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나 되렴, 넌 충분히 사랑받을 녀석이니,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치보다는 그쪽이 이 녀석의 적성에 더 맞지 않을까 싶기도 했었다. 정치인들 중에서는 알파가 많으니 오메가인 둘째에겐 좀 힘들수도 있겠다는 것도 있었다.

 그 판단은 몇 년 뒤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바로 지금, 그의 아들은 꽤 이름난 모델이 되어 있었다. 정치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유 의원은 연예인의 유명세가 이미지 세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알았다. 유진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 나름의 힘으로 형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연예인 동생이 형의 유세 현장에 나타나 힘을 실어주면 그것만으로도 기사 몇 개는 쓸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다. 덕분에 과거를 생각하면 유 의원은 늘 그때 아들에게 순순히 연예인을 하라고 허락해주었던 자신에게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 되곤 했다. 이 정도로도 자식 농사는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아버지이... 전 결혼하기 싫어요."


 그 둘째가 이렇게 저에게 와서 펑펑 울고 있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유 의원은 한탄과 안타까움을 담아 혀를 차며 한 시간째 징징거리고 있는 아들 녀석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다 쇼맨십이야, 쇼맨십. 너 요새 연기도 늘었다면서 어찌 그러냐. 응? 어차피 이 바닥 애들이 다 좋아서 결혼하는 거 아닌 거 몰라? 다 알만한 애가, 왜 그러냐. 집도 넓을 텐데 그냥 혼인 신고만 하고, 따로 방 안에 들어가서 살면 되지 않겠어?"


 딴에는 혼을 내는 것이지만 둘째에게는 한없이 약한 아비였기에 나오는 것은 쩔쩔매는 목소리였다. 그렇지만 유진은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벌써 서럽다는 듯 다시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제야 애를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키웠다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유 의원은 천생이 자기 마누라 같은 타입의 사람에게는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시 조곤조곤 소리를 내어가며 아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어렵게 맺은 둘째 아들의 결혼을 위해. 


 "얘, 조조가 얼마나 잘난 배우인지는 알고 있잖니."

 "그렇지만... 아는 것은 그 사람 얼굴 뿐이고, 성격은 어떤지 모르잖아요. 전 아직 그 사람이랑 마주쳐본 적도 없다고요."

 "성격이 어떻든 너에게 감히 나쁘게 굴 수 있겠니? 원래 성격이 개차반인 녀석이라도 그걸 너에게 들이댈 수 있겠느냔 말이야. 감히 내 아들에게 그러겠니? 놈이 그런 일을 하기만 하면 당장 나에게 찾아오거라. 내가 변호사 붙여서 그 녀석을 사회적으로 아주 매장을 시켜줄테니. 정 못살겠거든 이혼을 시켜줄수도 있단다. 하지만 일단 결혼 해서 한 3년 정도만 참으면 안 되겠니? 조가하고 동맹 맺는 게 얼마나 니 형에게 이득일지를 좀 생각해보련, 아가." 


 그는 180cm가 넘어가지만 아직도 제 눈에는 작게만 보이는 둘째의 등을 토닥였다. 사랑하는 아들을 정략혼에 팔아넘겨야 하는 아비 마음도 썩 좋지만은 않으나 그가 이 결혼을 고집하고 밀어붙일 수 있는 이유는 상대방의 조건이 부모로서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썩 흡족했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아들 앞에서는 조금 나쁘게 말했지만 사실 그는 조태오라는 사윗감이 썩 나쁘지 않았다. 미리 뒷조사도 모두 끝냈고, 부러 그를 고른 꿍꿍이 셈도 있었으니까. 

 정치적으로도 이득이어야 하지만 아들의 인생에도 이득일수 있도록 고르고 골랐다. 현재 전자제품 시장을 양분화하고 있는 대기업 오와 위는 둘 다 혼인적령기의 알파 아들을 데리고 있었지만 유 의원이 굳이 위의 조가를 고른 것은 위 회장의 맏아들 조태오가 외동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그는 어머니가 없었다. 유진이 껄끄럽게 대해야 하는 시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반면 오의 손가는 손책이라는 아들이 참 인상 좋고 괜찮은 남자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는 오빠만큼이나 똑똑하다는 여동생과, 남편 대신 회사를 이끌어갈 정도로 대단한 여장부인 오부인까지 어머니로 두고 있었다. 여러모로 유진이 기를 세울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유 의원은 손을 잡을 곳으로 기업 위를 골랐다. 마침 조태오 역시 유비와 같은 연예인-배우-였으니, 그것으로 대중들에게 포장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정계와 재계가 부적절하게 혼인 동맹을 맺은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눈이 맞은 연예인 커플(그저 집안이 금수저일 뿐인)이 생겨난 것으로. 

 위의 회장은 이 제안을 반갑게 맞아들였고, 그 아들 조태오도 동의한 것으로 밝혀지자 기쁜 마음으로 아들에게 알려준 터였다. 그런데 순순히 "네 알았어요 아버지" 할 줄 알았던 아들이 싫다며 서럽게 반항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끔 철없는 부탁을 하거나 조르는 일이 있긴 했어도 아버지가 하라는 것을 절대 어겨본 적은 없는 아들이었다. 그런 그가 반항을 하니 유 의원도 조금 골치가 아팠다. 정말 사랑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쇼윈도 부부로서 생색만 내라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싫었던 것일까? 정 싫으면 집까지 따로 얻어주겠다고 하는데도 유진은 막무가내였다. 제 말마따나 이 바닥 사람들이라면 거진 정략 결혼을 하는 것임을 잘 아는 녀석일텐데도 그랬다. 

 저만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한 것인가? 머리를 짚었던 그는 조금 뒤 유진이 털어놓는 이유에야 어이없는 납득을 하고 탄식을 했다. 아들은 울먹이며 말했다. 


 "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기다리기로 한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아이고, 그거 참. 그거 참 내 아들이지만 참.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들의 사랑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아들 옆에 누군가가 생기면 뒷조사부터 했던 아비니까. 드물게 아주 길게 길게 갔던 마지막 연인 '서서'에 대해서는 그도 알고 있었다. 그 알파 여자애는 아이돌 출신의 연기자였는데, 아예 못 사는 집은 아니었으나 부모가 각각 의사와 교사라서 유가의 집안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곳이었다. 다만 유진이 연인을 깊게 사귀지 않는 것을 생각해 가만 두고 보았는데 우려할 정도로 길게 가서 유 의원이 처음으로 '돈을 주고 떼어내야 하나' 라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었다. 

 다행히도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 여자는 미국에 유학을 가겠다며 유진과 헤어졌고, 저 멀리 떠나 연락이 없는지가 2년째였다. 긴 시간 덕에 유 의원도 그 계집에 대한 것을 다 잊고 있었는데 유진은 아닌 모양이었다. 내 아들이 기약도 없이 떠나간 연인을 2년 동안 기다리고 있다니, 그 연인 때문에 결혼을 못하겠다는 호구라니. 한숨이 푹푹 나왔다. 

 하지만 '당장 결혼이나 해!'하고 윽박질 정도로 모진 아버지는 되지 못해서, 그는 싫은 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꾹꾹 눌러참으며 다시 그를 설득했다. 결혼을 해도 애인은 사귈 수 있다는 것, (물론 천생연분인 마누라를 만난 자신은 그런 적이 없지만) 원한다면 몰래 만날 수 있게도 해주겠다는 것, 그 애가 유학을 접고 돌아오면 이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겠다는 것. 여러 안을 제시했지만 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혼을 하면 서서에게 떳떳한 연인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대체 그 여자가 아들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이 애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를 한탄하며 그는 뒤를 돌았다. 이번에야말로 '결혼하지 않으면 집에서 내쫓아버릴 줄 알아' 같은 말을 매몰차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건만, 애처럼 엉엉 우는 소리에 또 그러지도 못했다. 

 결국 그는,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직접 나가서 거절하고 오렴." 이라고 말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직접 조태오, 배우 활동명 조조를 만나러 갔다온 유진은 결혼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조태오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요. 그 사람이 온다면 전 당신과 이혼할 겁니다."


 놀랍게도, 유진이 그에게 하고 싶은 말 그대로였다. 그래서 유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도요."


 태오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는 유진에 대해서 뒷조사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가 자신처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일지도, 나중에 이혼한다고 해도 구질구질하게 달라붙지 않을 사람인 것을 알아 결혼을 결정한 건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유진의 마음에서도 결혼을 해야 할 이유가 확고하게 생겨버렸다. 

 사랑 대신에 동지애 비슷한 것을 알고서, 유진은 태오와 결혼하기로 했다. 


 부모들까지 함께 만난 자리에서 두 사람이 한 거짓말은 다음과 같았다. 


 "첫 만남에 사랑에 빠졌어요."  

 

 물론 결혼은 두 사람이 시작한, '이혼 프로젝트: 짝사랑 기다리는 모임'의 서막을 여는 것에 불과했다. 












 쬬윱인데 아직 둘이 사랑하지 않아서 그냥 조조와 유비. 

 거짓말 하니까 이런 것만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