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

[레히삼/쬬윱] 쇼윈도 2

브리아나 2017. 11. 26. 11:41












 인기 연예인의 결혼 소식이 발표되면 으레 그렇듯이,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는 그의 이름이 올랐다. [유비], [유진], [조조], [조태오], [결혼], [속도 위반], [열애설], [유비 조조 나이차] 같은 것들이 오르락 내리락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있자니 발표하는 입장에서도 반응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활동명이 아닌 본명을 검색하는 것은 팬들-아마 갑작스러운 결혼에 넋이 나가 있을-일 것이고, 속도 위반은- 으음, 어디에서 나온 걸까?-연애를 한다고 밝힌 적도 없는데 바로 결혼부터 한다고 해서 정황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추측한 것일지도 모른다. 유진과 태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날 리 없다는 것은 당사자들이 더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가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난다는 거 알고 놀라는 팬들도 있어. 태오, 대체 얼마나 아저씨처럼 살아온 거야?"


 SNS 태그를 훑어보며 유진은 연신 키득거렸다. 그 반응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닌 것이, 사실 유비도 조조에게 직접 듣기 전에는 그가 30대 초반일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연기가 깊이 있고 묵직한 데다가 성숙한 역을 많이 맡아온 배우인 탓에 그런 편견이 있었던 것이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얼굴도 아직 젊고 패션도 20대의 그것인데 말하는 어조나 목소리, 취향 같은 것을 들어보면 조금 나이가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해서, 그에 대해 정말 잘 아는 팬들이 아니면 대개 일반인들은 유진처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타박에 태오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지만 '애늙은이' 소리는 많이 듣고 살았는지 반박하지는 않았다. 


 "#태오야_행복해 해시태그가 유행 중이야. 좋은 팬들을 뒀구나." 

 "뭐, 그렇지."
 "#진아_행복해 해시태그는 없는데! 좀 부럽다. 난 다들 탈덕한다는 사람 뿐이야."

 

 아무래도 유진 쪽이 유사 연애 기믹을 더 써먹었기 때문이겠지만 늘 '사랑해요' '행복해요' 하던 팬들이 실망했으니 떠나겠다고 하는 걸 보는 건 쓸쓸했다. 좋아하던 연예인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실망한 적이 있어 팬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어차피 더 오래 연예계 일 하는 사람은 나일 텐데. 태오 넌 나중에 아버지 사업 물려받을 거잖아."

 "그렇지."


 태오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너도 서서란 여자랑 다시 만나 연애하게 되면 연예 쪽 일 안할 거라고 했잖나?"

 "아, 그건 그렇지."


 유진은 입을 빼죽거리던 표정을 바꿔 해사하게 웃었다. 태오의 말이 맞았다. 서서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팬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 쯤은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그 때가 되면 조조와 헤어지고 서서와 다시 연애한다는 것으로 구설수에 오를 테니까, 연예계 일은 안하는 게 이득이었다. 

 어차피 애초부터 일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한 재산이다. 조금 먼 훗날의 이야기지만 지금 좀 팬을 잃으면 어때. 유진은 기분이 좋아져 폰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 잘 기억하고 있었네?"
 "뭐, 그렇지." 

 

 방실방실 웃으며 한껏 기분 좋음을 어필하자 태오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뚱하다고 볼 수도 있었으나 유진은 그의 이런 모습이 편한 상대의 앞에서 보이는 것임을 이제는 알았다. 제 아버지에게조차 예의라는 한 겹의 방패를 두르고 대하던 그가 유진의 앞에서는 모든 걸 풀어 헤친 채 편하게 있었다. 유진은 그것이 제가 그의 비밀을 공유한 사업 상(연애 상) 파트너라서 그런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태오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나 다른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말을 이 사람은 잘 들어주고, 알아주고 이해해줬으니까. 제가 그의 사정을 알아주고 이해하듯이. 그의 말을 듣자마자 결혼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선 건 본능적으로 그걸 깨닫게 되어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저도요."라 홀린 듯 대답하고서 제 사정을 다 털어놓은 것은 초면의 일이었으니까.


 유진은 그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데뷔를 막 하고서 힘들었을 때 프로그램을 하다가 만났던 서서라는 아이돌과 친해져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고, 사귀게 되었다고. 그녀의 집안은 평범했지만 저는 둘째이기 때문에 상대를 골라 결혼해야 하는 형과 달리 아버지가 그녀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는 것도 다 말했다. 프로포즈를 할 생각도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중요한 말이 있다고 불러낸 서서가 미국 유학을 갈 거라고 했다는 것도. 일주일 뒤 당장.

 유진은 당연히 놀라서 붙잡았다. 대체 무슨 말이냐고, 왜 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고, 놀리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서서는 묵묵부답이었다. 처음 보는 미소가 사라진 얼굴에 비로소 진심임을 깨달은 유진이 뭐가 어찌 됐든 간에 가지 말아달라고 매달렸는데, 서서는 그마저도 뿌리쳤다. 난데없이 달라진 태도에 유진은 집에 돌아와 혹시 아버지가 그녀에게 다른 짓을 한 건 아닌지 의심하여 깽판도 쳐봤지만 아버지의 당황한 반응을 생각하면 그가 무슨 짓을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대체 그녀는 왜 유진을 버리고 떠난 것일까? 

 "다른 사람이 생겼던 것은 아냐?"하고 이야기를 들은 태오는 말했었다. 유진은 제가 아직 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정황을 어느 정도 알아챈 그의 사고력에 놀랐더랬다. 맞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서서는 혼자 출국하지 않았다. 미국행 비행기를 탈 때 그녀의 옆에는 한 명의 친구가 있었다고 했다. 제갈량. 유진이 이미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서서의 유일한 친구이자 동창인 남자였는데, 제가 서서와 막 사귀게 되었을 때 데이트에 끼어들어 저를 이리저리 훑어보며 검증했던 사람이었다.  

 

 "... 아냐. 다른 사람은 없었어." 


 하지만 서서는 그가 그저 친구일 뿐이라고 했다. 제갈량 역시 저에게 그렇게 말했다.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이리저리 물어보았던 것은 서서를 걱정해서 그런 것이고, 그가 서서에게 잘한다면 자신은 끼어들 이유가 없다고 했었다. 사랑하는 여자 옆에 그를 끔찍히 여기는 다른 남자가 있다는 것은 기분이 좋을 일이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정말 서로를 친구라고, 그때 이후 제갈량이 제 눈앞에 모습을 보이는 일은 없었으니 유진은 그에 대한 것을 서서히 잊어갔다. 그런데 서서는 출국할 때 그와 함께였던 것이다.

 처음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나만 사랑했다고 했어. 다시 내게로 돌아올거야."


 그래도 유진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 서서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이별의 그 상황에서도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헤어지자고 한 거면 그렇게 말했었을 거라고. 그러지 않았으니 다른 남자가 생긴 건 아닌 거라고. 유학을 친구와 함께 떠난 것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가 돌아오는 것을 이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그 끈질긴 믿음 덕이었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 제 옆에 설 거라는. 

 유진이 그렇게 주장하자 그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던지 태오도 더 이상의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서 오가는 유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서서가 돌아와 유진의 옆에 설 것'으로 정리되었다. '언젠가 태오는 그의 사랑을 이룰 것'이라고 서로 합의한 것처럼. 


 "...그래서, 너희 선배는 뭐래?" 


 하지만 그에게 그의 사랑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역시 조심스러웠다. 유진이 보기에는 바로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그가 저 멀리 떠난 여자를 좋아하는 저보다 사랑을 이룰 가망이 더 커 보였는데, 태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태도로 묻자 태오는 잠시 침묵하다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뭐, 축하해주시겠지. 그 사람이라면."

 "...그렇구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결혼 축하를 받는 기분은 얼마나 끔찍할까. 유진은 태연해보이는 태오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동지를 향한 연민과 격려의 의미로, 손을 뻗어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태오는 픽 웃었다. 이제 곧 결혼을 앞둔 연인의 달짝지근한 모습으로 기대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 정도의 파트너 관계라면 꽤 나쁘지 않은 쇼윈도 부부의 출발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