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

[레히삼/제윱]180405

브리아나 2018. 4. 5. 22:24

그대의 곁에 있으면 바람조차 달랐다. 달았다. 시원했다. 시간을 잊었다.

#당신을위한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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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곁에 있으면 바람조차 달랐다. 달았다. 시원했다. 길가의 나무들은 인사하듯 손을 흔들고, 꽃들은 흔들리며 노래를 불렀다. 세상은 찬란하고 빛이 났다. 아름다웠다. 그 환상 속에서 나는 시간을 잊었다.


 그대가 없으니 바람은 또 달라졌다. 메마르다. 차갑다. 길가의 나무들은 그저 나무들이고, 꽃은 그저 꽃들이었다. 세상은 무채색으로 바뀌어 무미건조하게 흘러갔다. 나는 그 안에 덩그러니 남겨져 길을 잃은 아이처럼 웅크린 채 기다렸다. 그저, 그저,


 다시 시간이 흘러가기를. 



 "제갈량? 왜 나와 있어?"


 다시 시계 바늘이 움직였다. 그대가 왔다. 손 끝의 감각이 새롭게 살아난다. 세상이 흘러간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입 꼬리를 올렸다. 눈앞에는 내 세상의 중심이 있었다. 나의 의미이자 구원. 숨을 쉬자 달디 단 바람의 맛이 허파를 통해 들어왔다. 세상은 다시 제 빛을 찾고 멈춰있던 소리들은 활발하게 움직이며 고요를 깨뜨렸다. 흑백의 풍경에 다시 색이 칠해지는 것을 느리게 관찰하면서 나는 대답했다. 


 "그냥요."


 무미건조한 목소리는 부끄러움의 표시였다. 그대가 절대 알 리 없는. 알기를 바라지도 않는. 그래도 티가 날까봐 덧붙였다. 


 "다음에는 나가실 때 저도 데려가시지요. 제가 없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제가 없을 때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빠르게 헤어질지도 모르니까요. 그 말은 속으로 숨겼다. 친절한 그는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슬퍼했기 때문이다. 그게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배틀도 다 끝났는데 뭘. 누가 날 공격할 것 같지는 않은데?"

 

 하고, 태평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래, 다음에는 그럴게."하는 대답에 나는 또 마음을 놓았다. 그래서, 


 "약속하신 겁니다." 


 하고, 못미더운 대답 하나로 끝내버리고 마는 것이다. 떨어졌던 순간부터 마음 속에 자리잡았던 불안을. 

 어쨌든 그대는 약속 하나는 잘 지키는 사람이었으니까. 


 사실 머릿속으로는 그 약속 역시 오래 가지 못할 것을 안다. 한 순간의 유예일 뿐이란 걸 안다. 언젠가는 정말로 시간이 멈추는 날이 올 것이다. 슬픔이 가슴을 짓눌러서 몸을 산산조각으로 부수듯 거대한 고통을 안겨줄 날이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것으로 되었다. 옆에 있는 것으로 되었다. 함께 있어주기만 하면 잊을 수 있다. 곧 다가올 끝을, 지금의 한정되어 있는 시간을. 나는 최대한 길게 이 순간을 지킬 것이었다. 가능하면 아주 아주 아주 아주 길게, 마치 영원토록 지속될 것처럼. 

 계속해서 이 흘러가는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처럼. 


 아, 또 바람이 멈추고 세상이 느려졌다. 시간이 사라지고 빛이 힘을 잃었다. 무뎌져가는 감각 속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또 다시 떨어져 돌아가는 길이었다. 세상이 멸망할 것만 같다. 

 그대만 없으면 난 늘 이렇다. 그대와 헤어지면 난 늘 그렇다. 이 숨막히는 침묵 속에서 살아가는 게 익숙하게 될 날이 올까요? 당신이 없는 영원에 적응하게 될 날이 올까요? 오늘도 대답없는 질문을 던졌다. 












 배틀 이후 옥새 관리자가 된 제갈량. 

 평소에는 일을 하고 주말 정도에만 유비를 만나러 오는데 유비가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걸 자각한 다음부터 답없는 짝사랑이 심해져 분리 불안증 같은 게 생기게 되면 좋겠다. 

 그래서 종국에는 어린아이처럼(물론 말투까지 어린아이 같지는 않음) 옆에서 떨어지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게 되는 그런 거 보고싶다. 유비와 관련된 일이면 못내 초조해지고 이성적이지 못하게 되는 제갈량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