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

[레히삼/쬬윱] 뒤집힌 2

브리아나 2018. 5. 8. 22:07

1 http://glakdhkfl0123.tistory.com/176











 유장은 점점 엇나감이 심해졌다. 사춘기에 접어든 알파들은 과격해진다지만 정도를 넘어섰다.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아버지와 다투는 화제는 하나였다. 집안의 사업을 잇지 않겠다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이 집에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다고요." 


 사춘기 아이 특유의 반항심이 뚝뚝 묻어나오는 말이었다. 다른 주제였다면 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집안을 맡길 장남이 하는 말이기에 아버지는 쉬이 넘어갈 수 없던 듯 했다. 그는 '이 집에 태어났기에 네가 누려온 것이 있는데 어떻게 그 의무를 저버리려 하느냐'고 맞섰다. 두 사람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렸다. 

 예상치 못한 것은 싸움의 지속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것과 텀이 짧아지고 있다는 것, 유장이 더 나이를 먹기 시작해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는 그들의 다툼이 비단 사춘기에만 국한될 것이 아님을 깨달은 듯 했다. 유장은 진심으로 사업을 잇고 싶지 않아했던 것이다. 억지로 물려준다면 아예 통째로 말아먹을 기세였다.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세상을 좀 더 알고 나면 집안으로 기어들어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끝까지 고집을 피울 경우를 대비해서 유씨는 스페어 카드를 찾아놓아야 했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


 12살에 유비는 성향 판정을 받았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오메가. 원래부터 오메가일 거라는 말을 들어왔었기 때문에 유비도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도 딱히 놀라지 않았다. 히트 사이클이나 러트 때문에 제약이 있었던 것도 다 옛말로, 요새는 약이 좋아져서 오메가고 알파고 베타고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다만 어머니는 유비에게 네 삶이 그 전과 아예 같을 수는 없을 거라는 모호한 이야기를 했다. 그럴 거라고 짐작되던 것과 땅땅 못이 박히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길이 정해졌을 때 달라지는 변화에 대해서는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유비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끝끝내 그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 채, 손님을 맞으러 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태오 형'이었다. 


 같은 계열의 사업을 하고 있는 네다섯 가구의 가족끼리 만나 회동을 가지던 것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다만 거기에 이제는 어린아이가 없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야 데려오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 머리가 굵어진 아이들은 하나둘 독립해서 빠져나갔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태오와 유진마저 10살을 훌쩍 넘고, 14살이 된 태오가 모임에 나오는 것을 꺼려하기 시작하자(유진을 생각해서인지 나오지 않겠다고 말하진 못했지만) 모임은 부모들만 모이는 것으로 변경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 뒤로 유진이 태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유씨 집안에 조씨가 아들을 데리고 방문할 때 정도 뿐이었다. 다행인 것은 조씨는 유씨와 골프를 치러 가기를 좋아해서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방문했다는 것이다. 시험 기간만 겹치지 않는다면 태오도 유진을 보러 왔다.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 학교도 달라지고 키 차이도 더 크게 나기 시작했지만 둘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유진은 태오를 많이 좋아했다.

 

 "어서 와, 태오 형!"  

 "안녕."

 "오랜만이네, 유진."
 "안녕하세요!"


 어른에게 먼저 인사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태오부터 반겨버린 유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버지가 나무라는 눈빛을 보이자 움츠러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태오가 반가웠는걸. 이번 만남은 정말 오랜만의 것이었다. 

 정작 태오는 눈빛으로만 아는 체를 해왔지만 그게 서운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태오는 중학생이 된 뒤부터-아니면 그 전부터?- 조용하고 말수가 없어졌으니까. 일부러 유진은 서운하게 한 게 아니라 본인의 성격이 그런 것 뿐이란 걸 유진은 잘 알았다. 

 

 "사이가 좋구만, 자, 가서 놀아라."


 태오의 아버지가 구원해주고 난 뒤에야 둘은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어른들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건 신경 쓰지 않는 채로 유진은 폴짝폴짝 뛰어 방으로 돌아왔다.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는 태오는 이미 방으로 오는 길이 익숙한 눈치였다. 서로의 방에서 논 게 한 두 번이 아니니까 당연했다. 유진은 태오가 들어오자마자 문을 닫고, 방긋 웃으며 이번의 빅 뉴스를 알려주었다. 


 "형, 나 오메가 판정 받았다."

 "아, 벌써 형질 판정 시기던가, 네가?"

 "아니! 나 아직 12살인데, 근데 결과 나왔어!"


 보통 형질 판정은 13~15세에 이루어진다. 태오도 13세에 형질 판정을 받았다. 그 전에는 결과가 애매할 뿐이라 신체 검사에서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유진은 결과가 이르게 나온 것이다. 

 이 같은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빠르게 성숙한 아이거나 '우성'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을 정도로 형질이 강한 경우에는 이렇게 이르게 판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어찌됐건 결론적으로는 아이들에게 '어른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말이다. 태오는 작게 웃으며 유진이 원하던 말을 들려주었다.


 "그래, 축하해. 나보다도 빨랐네."

 "히히. 아직 사이클이 오기엔 멀었다고 하지만 말이야." 


 유진이 뿌듯해하며 말했다. 태오는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형질 판정에 대한 말은 자유롭게 하는 세상이라도, 본인의 '사이클'이나 '주기' 같은 것에 대해 입에 담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했다. 무척 프라이버시한 영역인데다가 대화의 주체가 알파와 오메가라면 높은 수위의 성적인 대화처럼 비춰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유진이 그런 걸 잘 알고 있을 리가 없지만. 태오는 머쓱하게 웃으며 "그래서, 역시 오메가야?" 하고 화제를 돌렸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엄마가 이제부터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래. ... 음... 삶이 좀 달라질 수도 있을 거라고 했어. 형질이 정해졌으니 그걸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했고.. 뭐랬더라... 다른 건 기억이 안나네."

 "뭐, 맞는 말씀이지. 나도 그랬잖아." 


 태오가 시니컬하게 말했다. 유진은 그의 말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을 다물었다. 태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귀중한 알파 남자애를 버리지 못할 테니, 라고 하면서 납치하는 사람도 있는데 오메가라고 없을까. 너도 조심해야 해."

 

 그래, 저 사건. 태오가 13살일 때 일어났던 납치 사건 말이다. 태오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혹시 너희 집에 있냐고 전화가 왔을 때 얼마나 어리둥절했던지. 그 뒤에 납치 사건이라고 판명이 나자 유진은 벌벌 떨면서 태오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었다. 그 기도가 먹혔는지 태오는-모든 경찰들이 안 될거라고 했는데도-온전하게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뒤로는 성격이나 사람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져 있었다. 좀 붙임성만 부족할 뿐 수더분하던 성격이 날이 선 것처럼 바뀌고, 이따금 큰 소리를 치고 화를 내거나 예민하게 주위를 심하게 경계하기도 했다. 

 본인한테도 그 일이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것 같아 절대 그의 앞에서는 관련된 용어를 꺼내지 않았는데 이 타이밍에서 이 말이 나오다니. 내가 실수했나보다 생각하며 유진은 속으로 저를 자책했다. 

 그 속을 알지 못하는 태오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나는 그래도 왕윤 형사님이 구해주셨지만, 형사님 같은 분이 세상에 둘이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알겠지?"
 "으, 응! .. 아 맞아, 우리 보드 게임 하자! 이거, 음, 저번 생일에 아버지가 사준 거야!"


 태오는 점점 그 사건을 극복해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행인 일이지만 계속 지뢰를 밟은 기분으로 있고 싶지는 않아서 유진은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


 "....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나도 이제 조심하려고요."


 조씨 가족이 돌아간 뒤, 거실에 어머니와 둘만 남아있을 때 유진은 태오에게 들은 이야기를 했다. 그가 납치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해서 다행이라거나 납치 사건 이후부터 태오가 찬양하듯 노래 부르기 시작한 '왕윤 형사'님을 저도 만나보고 싶다는 이야기 끝에 나온 결론에 어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태오랑 사이가 좋아보여서 다행이구나." 

 "네, 사이 좋아요. 형은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해줘요."

 

 어쩌다 유장과 마주치면 으르렁거리며 싸울 때도 있었지만 유진에게는 어렸을 때의 태도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가끔 낯설거나 무서운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건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친형인 유장조차도 나이가 들면서 변하고 있는걸. 요새는 유장과 유진이 싸우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90% 정도의 원인은 다 유장이 제공한 거였다. 생각하니까 갑자기 화나네? 씩씩거리고 있을 때 어머니가 신중하게 말했다. 


 "그래, 정말 다행이야. 약혼을 해도 크게 사이가 나빠지지 않게 되면 좋으련만." 

 "....?"


 그 목소리에 유진은 잠시 세상에서 제일 가는 멍청이가 되어 서 있었다. 아주 잠깐, 제가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 것은 다 아는 나이인데도, 본인의 일이니 쉽게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네? 뭐라고요? 약혼? 


 "약혼이요? 제가요?" 

 "응. 아직 확정된 건 아니고, 그러는 게 어떨까 하고 말만 나온 거지만."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벌써 12살이잖니. 네 나이에 약혼은, 좀 이르긴 하지만, 드문 건 아니야."

 "하, 하지만..!"

 "사실 네가 오메가 판정을 받았을 때부터 아버지가 걱정을 하기 시작하셨거든. 요즘에야 오메가 차별이 없는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딱 맞는 짝을 찾아 붙여주고 싶은 게 아버지 마음이니까. 급이 맞는 알파를 찾는 게 좀 힘들거든. 미리 찾아서 찜을 해놓자는 개념인 거야. 물론 약혼을 했다고 커서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무서운 얼굴 하지 말고."

 "그치만 거의 결혼을 해야 하는 건 맞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래도 유진 너는 태오랑 사이가 좋잖니."

 "......사, 상대가 태오 형이에요?"


 거기서 유진은 또 비명을 질렀다. 어머니는 "얘는, 싱겁게. 지금까지 무슨 말을 했다고 생각하니." 하고 가볍게 핀잔을 주었지만 진심으로 놀라는 유진이 좀 의아한 모양이었다.


 "왜, 태오는 알파고 넌 오메가잖니? 너희 둘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아, 친한데! 친하긴 한데..!"


 친하긴 한데 그쪽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태오 형은 그냥 태오 형이었다. 친형 같은 형. 가족은 아니지만 친구처럼 친근한 형. 딱 그런 형이었다. 결혼이나 약혼, 알파나 오메가, 그런 것을 대입해서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간 쌓아놓았던 관계 같은 게 굉장히 이상하게 보이는 기분에 유진은 혼란스러워졌다.


 "뭐, 아직 정해진 건 없으니까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만 알고 있으렴. 너무 크게 고민하지 말고. 네가 싫다면 안하는 게 나랑 네 아빠니까." 


 패닉에 빠져 머리를 붙잡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그냥 웃고 자리를 떴지만, 유진은 그녀의 말대로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가 없었다. 저를 존중해주는 건 사실이지만 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판단한다면 꼭 일을 진행시키는 아버지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업이 이렇게 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빠른 결단력과 진행 속도 때문이라고, 누군가 말하는 걸 들은 적도 있지 않는가. 유진은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