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glakdhkfl0123.tistory.com/147?category=759873












 2-1



 히어로 본부는 거대한 캠퍼스를 가진 대학교 같았다. 목적별로 나눠진 커다란 건물 몇 개를 잘 정돈된 길들과 도로들이 감싸고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오고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근무하고 있는 히어로와 시티즌(본래는 '시민'이라는 뜻이지만 히어로에 대비되는 비유로서, 본부에서는 히어로의 이름을 갖지 않은 일반 직원들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을 합치면 이천 명이 넘어간다고 하니 이만큼 규모가 큰 것이겠지만, 유비는 압도적인 크기에 지레 질려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서서가 알려주는 길도 제대로 외우지 못할 것 같았다. 

 

 "사람이 정말 많네."


 여기 정말 넓네, 그렇게 촌스럽게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제가 주제에 맞지 않는 근사한 곳에 와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지만. 

 

 "그렇죠? 그래도 저희는 늘 인력난이에요. 사건과 사고는 언제든 발생하고, 마물의 출현도 예고가 없이 발생하니까요."


 씩씩하게 앞서 걸어가던 서서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인원 보충은 잘 안 되지, 부상은 많지... 해서 동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인원은 늘 실제 인원보다 더 적을 수밖에 없고요. 가장 발전한 시설이 병동이라는 것도 아주 우스갯소리만은 아니지요."

 "그렇구나.."

 "그래서 히어로 중에서는 병동에서만 근무하는 사람도 많아요."

 "음,.. 그럼,"


 부상이 많다는 말에 흠칫 몸을 떤 유비가 슬쩍 물었다. 너무 속이 보일까봐 지금까지는 자제했지만 그 이야기까지 나온 거 일단은 알아야겠다. 안다고 해서 지금 도망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죽는 경우도 많아?"

 "없진 않아요."


 신입이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자리라 거의 없다고 거짓을 말할 수도 있을 텐데, 서서는 순순히 대답했다. 아, 역시, 하고 유비는 조금 낙담했다.


 "사실 시티즌은 좀 많죠. 사무 업무를 보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만 직접 현장에 나가서 일하는 시티즌들... 히어로는 능력이 있어서 몸을 지킬수라도 있지만 시티즌은 그러지 못하니까 현장 업무 쪽의 사망률이 좀 많아요."

 "히어로는 별로 없고?"

 "네, 히어로는 드문 편이에요. 그래도 히어로니까요."


 어쨌든 사람이 죽어나가긴 한다는 말이니 슬퍼해야 할 텐데 히어로는 별로 죽지 않는다는 말에 안심해버리는 자신이 속물 같았다. 능력도 없지만 사람들을 위해서 현장에 자원하는 사람들의 정신을 숭고하게 생각해야 할 텐데 죽음을 두려워하다니. 히어로로서 이런 마음 가짐이 과연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오기 전에는 내 자리라고 하니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본격적인 곳에 뛰어드니 드는 생각이 많은 것이다. 제가 능력만 있다고 해서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 맞는 것인지. 그저 유비라는 이름 때문에 대단한 히어로들의 위에 서는 게 맞는 것인지. 여기 오기 전부터 몇 번이고 고민했던 것이 다시 괴롭히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그래서 현장 업무는 페이가 무척 세고,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을 잘해준다"는 서서의 설명은 귀에 잘 들어오지가 않았다. 다른 군주들이 알면 분명 형편없다고 생각하리라. 제 밑에 있을 히어로들에게는 들키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얼마쯤 걸었을 때 그들은 마침내 본부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그 전에 걷던 길도, 지났던 건물들도 모두 '본부'지만 실질적인 '본부'는 이곳이라고 서서는 말했다. '중앙 정보 관리 및 지휘부', 줄여서 '중정부'는 히어로 본부의 가장 가운데에 있는 건물이었는데, 바로 이 곳이 주요 책사 및 히어로 다수가 근무하며 그들의 수장인 세 군주의 방이 있는 곳이었다. 

 그 때문일까, 자동으로 열리는 문이 길을 내어주자마자 확 바뀌는 공기를 느끼며 유비는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어쩐지 여긴 감도는 기운조차 다르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먼지 하나도 없는 깨끗한 이 건물 바닥에 언젠가 제가 익숙해질 날이 오기는 할까. 자신이 없었다.


 뒤따라가는 유비의 심리 상태가 점점 착잡해지는 것을 알턱이 없는 서서는 즐거워보이는 얼굴로 긴 복도를 걸었다. 뚜벅뚜벅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던 굽은 맞은 편에서 들려오는 같은 굽 소리에 멈추었다. 

 서서가 멈추자 유비도 멈추었다. 이제까지도 여러 사람을 마주쳤지만 이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정말 히어로기 때문에, 맞은 편에서 들려오는 굽 소리의 주인공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그는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곧이어 "서서?"하고 이름을 불러오는 사람은 푸른 색의 브릿지가 인상적인 늘씬한 체구의 여성이었다. 

 유니폼도 브릿지와 같은 푸른색. 오 진영의 상징색이 푸른색이라고 했었지. 그럼 그녀는 오 진영의 히어로일까? 가장 처음으로 촉 진영의 히어로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나- 과연 다행으로 봐야 할지 아닐지 헷갈려서 유비는 잠시 우왕좌왕했다.


 "주유, 안녕."


 그 사이 서서가 헤실거리며 인사했다. 


 "이쪽은 유비 군주님이셔."

 "아..!"


 유비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이미 본부에는 전해져있었는지 주유란 이름의 여성은 금세 알겠다는 눈으로 유비를 돌아보았다. 제 모습을 보고 한심스러워하지 않을까 싶어 유비는 몸을 움츠렸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비를 꼼꼼히 뜯어보기 시작한 주유는 의외로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어쩌면 외모를 보고 있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유비의 외모는 제가 생각하기에도 딱히 봐줄 데가 없었으니까. 키는 컸지만 얼굴은 지극히 평범해서, 군주의 면모라곤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유비를 스캔하듯 빤히 보던 주유는 "역시."하면서 입 꼬리를 올렸다. 


 "과연 군주의 그릇이군요."

 "그렇지 그렇지?"

 

 주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서서가 방긋 웃었다. 대체 저의 어딜 보고 그녀가 저런 후한 평가를 내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조금 긴장이 풀려 유비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 다른 군주님들이 군주의 방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세요. 군주님을 보시면 기뻐할 겁니다. 제가 안내해드리고 싶지만 전 지금 일이 있어 가던 중이라..."

 "가도 돼, 내가 안내할게!"

 "하지만 서서 넌 저번에 길을 잃었잖아."

 "아..."

 

 주유는 절 첫인상 테스트에서 통과시켰지만 과연 다른 군주들도 절 보고 만족해할까? 그런 생각에 잡혀있던 유비는 주유와 서서가 나누는 만담을 듣고서 픽 웃었다. 음, 저보다 여기 더 오래 있었던 서서도 간혹 길을 잃는 모양이니 처음 온 제가 좀 길을 잃었다고 해서 책잡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니야, 이젠 잃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안심하고 가도 돼!"

 "뭐, 어차피 그래야 하지만.." 


 주유는 한숨을 쉬며 서서를 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나중에 보자. 군주님도 나중에 뵙겠습니다."

 "으응, 나중에 봐."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몰라 저도 모르게 반말을 썼는데도 주유는 아랑곳하지 않고 인사한 채 자리를 떴다. 군주 자리에 있으면 말은 편하게 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 성격인걸까. 유비는 잠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 다시 서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일단 처음으로 만난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듣는 것은 성공했는데- 다른 이들에게도 그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주유한테 인정 받으셨으니 잘 된 일이네요!"


 복도를 마저 걸어가며 서서가 폴짝폴짝 뛰었다. 유비는 고개를 갸웃하다, 그녀가 말하는 것이 아까 주유가 절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한 것과 관련이 있나 싶어 "주유 능력이 특별해?" 하고 물었다. 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유는 여기저기에서 탐내는 인재지요. 아쉽게 혼자서 싸울 수는 없지만.. 그녀는 여러 사람의 능력에 간섭할 수 있어요."

 "간섭?"

 "음... 우리는 주유를 Checker라고 해요. 히어로가 처음 발견되면 주유가 먼저 한 번 쓱 보고, 그 능력이 뭐고 그 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발현될 수 있는지를 보거든요. 능력의 그릇을 본다고나 할까요... 별 볼 일 아닌 능력이면 가차없이 판단하고 조를 짜는 게 주유 성격이니까, 군주의 그릇에 맞다고 한다면 유비 님은 정말 군주의 그릇에 맞는 사람인 거에요!"


 서서가 해맑게 말했다. 유비는 눈을 깜박이다가, 좀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방금은 정말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 그릇에 맞는 능력을 가졌다고. 물론 능력도 쓰기 나름이겠지만- 일단 '알맞은 크기의 능력 소지'라는 1단계는 통과했다는 기분이 들어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머지 복도를 걸으며 서서는 주유가 자신을 매우 약한 능력의 소지자로 판별했다는 것, 주유의 능력은 그저 능력의 크기를 체크하는 것 뿐이 아니라는 것, 옆에 붙어서 능력의 증폭과 축소에도 관여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 덕분에 항상 바쁘다는 것도. 군주의 방을 바로 눈앞에 두고서, 유비는 어쩌면 저도 언젠가 그녀의 도움을 받을 날이 올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봐, 맞지? 큐트 계열."

 "과연... 삼 군주의 법칙은 벗어나지 않네."


 CCTV를 통해 복도를 걸어오는 새 군주와 서서를 보고 있던 조운은 장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조운에게 돈을 주었다. 제가 내기에서 졌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었다. 장비답지 않게 깔끔한 승복이었지만- 이건 누가 봐도 그의 패배가 확실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내기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내기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고 있던 황충과 관우는 역시 법칙은 괜히 법칙이 아니라고 감탄하며 팔짱을 끼었다. 이제 곧 다시 일을 나가야 하니 이리 여유 부릴 틈은 없었지만, 새 군주가 온다는데 그의 얼굴은 보고 가는 게 도리인 것이다. 다른 두 군주는 촉 진영에게 먼저 제 군주 얼굴을 보는 것을 금지시켰지만 유비의 자리가 채워졌다는데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다. 제 군주가 왔는데 그를 보고싶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관리실에 몰래 숨어들어 복도를 걷는 그들의 주군을 훔쳐보고 있었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외모만 보면 난 꽤 마음에 들어."


 장비에게서 받은 돈을 주머니에 얌전히 넣으며 조운이 말했다. 그는 누가 봐도 인정할 '큐트 계열'이었고, 히어로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내려오는 '삼 군주의 법칙'은 대대로 유비의 이름을 잇는 자는 큐트 계열이고 조조의 이름을 잇는 자는 섹시 계열이며 손책의 이름을 잇는 자는 쿨 계열이라는 것이었다. 장비조차 제 패배를 인정할 정도니 이번 유비가 귀여운 편이라는 건 모두가 인정할 사실일 것이다. 이번 촉 군주는 귀엽다. 오늘부터 성립된 대 명제였다.

 사실 이것은 그들이 이번 군주를 기다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촉 진영의 히어로들은 대개 귀여운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인상만 보면 마음에 들었다. 키는 큰 편이지만 얼굴 생김새나 하는 행동 거지가 전체적으로 귀여웠기 때문에, 안구 복지로서는 괜찮은 것 같아서. 더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겠지만- 일단은 긍정적인 인상인 것 같았다. 


 "나도."


 황충이 조운의 의견에 찬성하는 동안, 관우는 시간을 보았다. 네 히어로들이 땡땡이를 치는 동안 다른 히어로인 마초가 그들의 자리를 메꿔주기로 했지만, 슬슬 그로서도 한계일 시간이 오고 있었다. 다른 군주들이 여기에 누군가 몰래 숨었었다는 것을 알기 전에 임무를 하러 가지 않으면 곤란했다. 그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인 뒤, 빛처럼 빠르게 자리에서 사라졌다. CCTV 속의 유비는 이제 막 군주의 방에 들어서고 있었다. "어서와!" 하고 손책이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갈 길이 멀도다. 

 전 편에서 1, 2, 3, 이런식으로 번호를 붙여 전개했는데 이번 편은 그 2와 3 사이라서 2-1로 붙였음. 2-N번이 꽤 많을 듯. 이 뒤편을 더 써나갈 수 있다면. 

 어쩌면 제윱이 아니라 유비른으로 커플링을 바꿔야할지도 모르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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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브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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