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윱의 이야기
싫어. 정말 싫어요. 미워할 수 있게 해주세요.
https://kr.shindanmaker.com/745992
유비가 쉽게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모든 일이 훨씬 쉬워졌을 거라고 제갈량은 늘 생각했다.
그에게 이상한 미련과 기대를 갖지도 않았을 테고, 원했던대로 더러운 경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진흙 구덩이를 바라만 보다가 훌쩍 소멸될 수 있었을 거라고. 어떤 것에 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을 지키며 유유자적 홀로 살다 갈 수 있었을 텐데. 어차피 허무함 뿐인 존재의 의미를 털어버리고 떠난다는 인생 경로는 달라지지 않았을 텐데, 어쩌다 그를 좋아하게 되어서 이렇게. 설계해두었던 모든 루트와 옆에 둘렀던 모든 벽들을 다 스스로의 손으로 무너뜨리게 되었는가.
정작 그는 자신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래, 그게 화나는 점이었다. 정작 유비는 저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좋아해주지 않을 거면 반하게 만들지나 말지, 왜 그는 이토록 사랑스러운 이라서. 허무뿐이었던 신선의 마음은 이제 번뇌와 상념으로 가득 채워진 채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저를 이렇게 만든 이는 정작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시간을 돌려서 과거의 자신에게 지금의 자신에 대해 말한다면 과거의 제갈량은 현재의 제갈량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버그가 걸렸거나, 자신을 속이는 누군가의 음모라고 생각하겠지. 스스로도 절대 믿지 못했을 변화, 그게 유비로 인해 일어났다. 그런데도 유비는 자신이 제 신선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억울한 마음을 꾹꾹 누르다가, 술이란 것을 먹었을 때. 마음의 제어가 풀려, 한껏 풀린 발음으로 "난 당신이 너무 싫어. 정말 싫어요. 세상에서 제일 싫어요. 그러니 미워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더니,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유비는 눈을 예쁘게 접어 웃으며 말했다.
"제갈량, 그 말은 지금 날 많이 좋아한다는 뜻이지?"
아, 젠장, 젠장! 망할 주군.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서.
하고 그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이번에도 또 주군에게 졌다. 또 한 번 새롭게 반해버렸으니까. 왜 이런 데에만 눈치가 빠를까? 속이 홧홧하게 끓어올랐지만 볼은 또다른 감정으로 불타올라 빨개졌다. 그래서 그는 입을 다물고 소주잔을 들었다.
"나도 제갈량을 좋아해!"
하고 주군이 2연타를 날렸다. 눈부신 미소였다. 보기에 퍽 좋았으나 사실 제갈량은 울고 싶었다. 그게 아니에요, 주군, 눈치를 반만 키우면 어떡합니까 상황을 제대로 읽어요, 하고.
바보 같은 주군. 당신은 언제 알까요, 당신의 '좋아해'와 내 '좋아해'가 다르다는 것을. 그런 간단한 것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당신이 너무 싫어, 정말 싫어서 미워하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이제 그러기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제갈량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도요."
그래서 짧고 소심한 고백으로 상황을 무마시켜버리곤 마는 것이다. 언제나와 같이.
모처럼 연성 메이커 마음에 드는 글귀가 나와서 천 자 정도의 짧은 연성 ㅇ0ㅇ
'레히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히삼/제윱]180405 (0) | 2018.04.05 |
---|---|
[레히삼/쬬윱] 좀 늦은 만우절 이야기 (0) | 2018.04.04 |
[레히삼/제윱] Moira 3 (2) | 2018.03.31 |
[레히삼/쬬윱] 주사위판을 클리어해야 나올 수 있는 방 (0) | 2018.03.27 |
[레히삼/쬬윱] 사고는 갑자기 (0) | 2018.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