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제윱] idiot

레히삼 2017. 9. 30. 01:08

제갈유비을 위한 문구는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입니다. 연성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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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운 게 아닐까? 너의 그 주군을 좋아한 게 아니었다면 그 사람 때문에 외롭진 않았겠지.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이 널 무시하든 말든 넌 평화로웠을 거야."

 "... 지금 너한테 논리적인 답 요구한 거 아니거든? 이건 그냥 시야. 난 시를 쓴 거라고."

 "아, 미안."


 유비가 짓궂게 웃었다. 대답과 다르게 미안함이라곤 전혀 없는 목소리였고, 그게 아니라도 제갈량은 그가 미안해하지 않고 있다는 걸 잘 알았다. 그는 그런 성격이니까. 

 그럼에도 더 크게 화를 낼 수 없는 건 장난스러운 웃음이라도 그가 웃으면, 제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에. 

 그는 고개를 돌리고 다시 묵묵히 쓰던 글을 썼다. 


[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


 "그런데 말이야, 정말 그 사람이 그렇게 사랑스러웠나봐, 네가 날 그렇게 보는 걸 보면?"

 "..."

 "내가 진짜가 아니라는 건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으면서, 나한테 화도 못 내잖아. 성격 엄청 나쁜 네가."


 이번에도 방해를 받았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좀 큰 거였다. 덕분에 제갈량은 오늘 안에 뒷구절 쓰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날을 세워 노려보자 유비는 다시 한 번 두 손을 들어올리며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미안하다는 제스쳐를 했지만, 이번에는 기억 속의 그의 '주군'답지 않았기 때문에 제갈량은 화를 낼 수 있었다. 


 "정신 사나우니까 나가. 보기 싫어."


 그래도 다른 이에게처럼 혓바닥에 가시돋친 말을 던질 순 없었지만 축객령은 축객령.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유비는 가뿐한 걸음으로 자리에서 나갔다. 혼자가 되었을 때 제갈량은 의자에 푹 눌러 앉으며 마른 세수를 했다. 정곡을 찌른 유비의 말이 다시금 머릿속을 맴도는 탓이었다. 진짜가 아니란 걸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으면서. 진짜가 아니란 걸. 진짜. 몇 십년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주군. 


 그래, 잘 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방금 나간 저 이는 진짜 유비일 수가 없었다. 진짜 주군이었다면 저에게 그렇게 말하는 일 따위 없었을 것이다. "글씨도 잘 쓰네, 대단해 제갈량!" 이라거나 "시가 정말 아름답네, 네가 쓴 거야?" 라거나, "그런데 누구에게 쓰는 말이야?" 같은 말을 했겠지.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상상만으로도 귓가에 찾아오는 그의 목소리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가 제 눈앞에 다시 나타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걸까?


 제가 그처럼 온화한 성품이 못 되어서 그럴까? 공을 들여 그의 외모를 본딴 이를 만들 순 있어도 그의 성격과 똑같은 이를 만들 수는 없었다. 외모는 유비를 닮았어도 성격은 저 본성의 것 그대로였다. 제 혼을 나눠주는 것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역시 하늘 아래 '유비'라는 사람이 또 태어나게 할 수는 없는가보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이렇게 확인을 하게 되면 하게 될 수록 그는 외로워졌다. 소중한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고, 자신은 그가 없는 세계를 쭉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지옥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잠시 후에 다시 제가 가짜 유비를 불러들일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생각하던 주군과 전혀 다를 것을 알면서도 만들기를 시도한 이유 역시 외로움 때문이었으니까. 그는 진짜 주군이 아니었지만 그 움직이는 외양을 보여주는 것으로 제갈량이 계속 살아가게 할 동기 부여 정도는 해주었다. 이제는 하루하루 지쳐가는 제갈량에게 남은 건 그것 밖에는 없었다.

 정말로 그것밖에는.  

 





Posted by 브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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