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과 반대로 유비가 먼저 좋아하게 되는 거 보고싶다 

1 http://glakdhkfl0123.tistory.com/136 <과 이어지는 글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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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좋던 어느날 오후, 유비는 자신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


 상대가 제갈량이라는 게 고생길의 서막이었다.







3


 제갈량의 옆에 있으면 늘 상반된 기분이 든다. 


 계속 같이 있고 싶은데, 도망가고 싶고. 계속 보고 싶은데, 부끄러워서 못 보겠고. 목소리를 계속 듣고 싶은데 또 귀를 막고 싶었다. 

 그가 저를 봐줬으면 좋겠는데 또 안 봤으면 좋겠고, 제 이름을 불러줬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주군이라고 부르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복잡한 마음이 사랑인 건가? 정말 사랑인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은 유비를 혼란하게 했다. 

 심장은 운동장 몇 바퀴를 뛰기라도 한 것처럼 요란하게 뛰고, 얼굴은 잔뜩 붉어지는 걸 보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았던 증상이 맞는데. 사랑이라니, 내가 사랑을 하고 있다니! 게다가 그 상대가 제갈량이라니?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모를 정도로 꼬인 문제라서 유비는 머리를 부여 잡았다. 


 사실 침착하게 생각해보면 제갈량을 좋아하는 게 쉬운 일이긴 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한 팀이며, 늘 저를 챙겨주고 지켜주며, 능력도 뛰어난 대단한 사람이니까. 거기에 얼굴도 잘생겼고 키도 크고 멋있었다. 성격은, 음, 다정한 건 아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그만하면 제가 반한 게 이상한 건 아니지 않을까.? 


 아니, 이상한 건가? 어쨌거나 그는 저의 신선이다. 같은 팀의 동료에게 사심을 품은 게 잘한 일인가? 어쩌면 이런 생각을 품은 것 자체가 잘못된 건가? 생각해보면 인간도 아니잖아? 유비는 그를 인간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신선 입장에서는 인간이 저에게 호감을 품는 것 자체가 불쾌한 일일 수 있었다. 그럼 어떡하지? 역시 잘못된 일인가? 

 생각을 이어가던 유비는 혼란에 빠졌다. 조그만 머리통은 곧 사랑과, 사랑에서 파생된 감정들로 가득차 복잡해기지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는 두 명의 유비가 서로 싸우고 있었는데 가운데에 있는 유비는 두 유비를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검은 유비의 의견이 맞소 노란 유비의 의견이 맞소? 하면 두 유비의 의견이 다 타당하니 알지 못하겠소, 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나, 이중인격인가 뭔가 하는 그런 게 아닐까."

 "? 뭐 잘못 드셨습니까?"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멍하니 내뱉은 말에 칼 같이 온 것은 제갈량의 대꾸였다. 그제야 그가 제 옆에 있던 걸 알았지만, 평소라면 얼굴이 붉어진 채 의식했을 것도 깊이 고민을 하다보니 별로 의식이 되지 않았다. 

 말은 그렇게 했으면서도 유비를 보고 있었는지 제갈량은 그의 주군이 빨래를 엉망으로 개는 것을 보고서 그의 상태가 뭔가 이상한 걸 알아챈 듯 했다. '늘 착착 각잡힌 상태로 옷을 개던 주군이 대체 무슨 일이지?' 그리 생각하는 얼굴로 그는 유비 이마의 열을 재려고 했지만, 놀란 유비가 몸을 뒤로 빼는 사람에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하도 굴렸다 보니 그가 다가올 때 몸을 빼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만, 


 "아, 깜짝이야!"


 저렇게 잔뜩 진심으로 놀란 채 얼굴을 가릴 필요까지는 없었지, 역시. 저도 모르게 과잉 반응해버린 것에 유비가 몸을 굳히자 제갈량은 머쓱하게 손을 거둬들였다. 


 "열이 있나 걱정이 되서 그랬습니다. 주군께서 그렇게 반사 신경이 좋으신 줄은 몰랐군요. 배틀에서도 그렇게 하시지요."

 "그럴게! 열은 없어. 그냥 조금 놀랐을 뿐이야."

 

 ...비꼬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걸 보니 평소의 주군이다. 제갈량은 조금 안심하며 손을 다시 패드로 가져갔다. 열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는지 유비는 다시 침착하게 빨래를 개기 시작했고, 제갈량은 그쯤 되어 신경을 껐지만, 유비는 갑자기 가까워졌던 제갈량의 얼굴로 인해 혼란을 반강제로 마무리할 수가 있었다.

 이게 옳든 옳지 않든 나는 제갈량을 좋아하는 게 확실하다고. 

 사실상 부정기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후 삽질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포기하자는 생각을 하고 그 시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사랑은 오묘한 것이라 한 번 들어온 자리에서 보통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쯤 되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어느새 너무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선 이 마음을. 

 

 유비가 '그 이후'를 생각하기 시작한 건 더 이상은 숨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 뒤였다. 태어나서 고백이라는 걸 해본 적은 없지만 거절 당할 때 당하더라도 말은 해보리라. 그렇지 않으면 비밀을 숨긴 게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았다. 그는 의지의 표시로 주먹을 꽉 쥐었다. 








4


 "다, 달이 아름답네!"

 "그렇군요."

 "..."


 제갈량은 드물게 솔직한 감상을 내어놓으며 부채를 살랑거렸지만, 조마조마하게 그의 눈치를 살피던 유비는 그 반응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멘트로 말을 틀지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인터넷을 검색해서 가장 마음에 든 걸 찾은 건데. 너무 돌려 말한 것일까. 제갈량은 그 뜻을 조금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계속 흘끔흘끔 보아도 그가 하늘만 바라보고 있자 유비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바늘을 찔러도 들어갈 것 같지 않은 태연한 얼굴로 달 감상을 하고 있는 이에게 사실 이게 좋아한다는 말을 돌려 말한 거라는 설명을 할 수는 없었다. 그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았다. 첫 고백이 무산된 것이 실망스럽기도 했고. 

 윽, 그래도 괜찮아. 못 알아 들은 것 뿐이잖아. 제갈량은 신선이니까 인간들 사이의 비유적인 표현은 모를 수도 있어! 어차피 나 외엔 아무도 모를 테니까 다음에, 다음 기회를 노리자. 유비는 속으로 울상을 하며 생각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빈말로 꺼낸 건 아니라서 달은 아름다웠고, 이 밤에 같이 있으니 데이트를 하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 다음에 제갈량이 '이렇게 밝은 밤에는 수련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한 것에는 조금 질려버렸지만. 









 5


 "제갈량과 계속 함께 하고 싶어."

 "?"


 아침, 유난히 정성을 들인 소시지와 계란 후라이를 접시에 얹어주며 유비는 말했다. 딴에는 긴장하여 손에 땀이 찰 지경이었지만 거울을 보고 몇 번 연습해서 그런지 목소리가 떨리진 않았다. 다만, '평생 같이 하고 싶어'일 예정이었다가 조금 삐끗했지만 그 정도의 뉘앙스는 알아들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말하는 것 같은 제갈량의 표정에 가슴이 쿵 떨어졌지만. 


 "그럼 그러지 않을 생각이셨습니까? 신선들은 주군과 계약을 맺으면 끊지 못합니다."

 "아....그게..."

 "...아니면, 저도 언젠가 서서처럼 소멸될 거라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아니, 내 말은."

 "주군이 약하고 생각 없으시긴 하지만 제 능력은 대단하니,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말씀은 그만 하시고 훈련이나 열심히 하시지요."


 네 알겠습니다.우리의 관계가 배틀 우선인 관계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줘서 고마워, 제갈량... 이게 비즈니스 관계라고 하던가? 유비는 허허 웃다가 고개를 젓고, 애매하게 고백을 해버린 자기가 잘못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저렇게 말했으면 당연히 배틀에 관한 말이라고 생각하겠지. 자신과 그의 관계 역시 특수하니 그럴 수밖에. 괜히 돌려 말했다가 '약하고 생각 없다'는 야단까지 들었다. 매일매일 듣는 말이지만 괜히 축 쳐졌다.

 훈련을 할 때마다 공격력이 약하다고, 제대로 맞추질 못한다는 소리를 듣더니 여기에서도 저는 그런 모양이다. 사람의 마음으로 고백의 말을 던져넣는 건 이렇게 힘들구나. 아니면 제갈량의 방어력이 높은 것일 수도 있었다. 신선인 제갈량은 '좋아한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모를 수도 있었다. 그러니 마음을 전하려면, 역시 노력해야 해. 

 빈 접시를 가지고 돌아서며 유비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6


 "저, 저기, 좋아해!"
 "저도요."

 "?!"


 너무 빠른 대답이 날아왔다! 그가 제 고백에 대답할 것을 여러 번 상상하긴 했지만 저것은 상상 이외의 답이었다. 그래서 유비는 이게 꿈을 꾸는 건 아닌지 볼을 꼬집어보지 않아도 되었다. 제갈량이 '저도요'라고 말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제가 고백을 했는데도 저런 대답을 들으니 얼떨떨해진달까, 눈앞의 이 남자가 진짜 제갈량이 맞는지 의심이 든달까, 역시 지금이 장각이 농간을 부린 환각 속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멍하니 서 있으니 제갈량은 그를 이상하다는 듯 보았다. 


 "뭐합니까?"
 "어? 아니, 그, 좋아한..."

 "네, 좋아해요. 소시지."

 "..."


 잊고 있었다. 제가 그에게 소시지를 건네던 중이란 것을. 오늘은 '좋아한다'는 말을 꼭 직접적으로 말하겠다는 생각에 긴장하다 보니 상황을 가리지 않고 말해버린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제갈량은 제 말을 다른 뜻으로 오해한 것이다, 하필 소시지로! 제 가장 큰 라이벌(?)로! 

 타이밍도 참 어이없지, 조용히 분위기를 잡으면서 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정신을 놓고 이런 때에 말해버린 걸까? 역시 소시지 접시를 건네주면서 고백한 제 잘못임이 틀림없었다. '좋아해'라는 말에 단번에 그 상대를 소시지로 판단한 제갈량도 제갈량이지만.... 연달아 실수만 하고 있다는 생각에 유비의 어깨는 쳐졌다. 간신히 짜내어서 '좋아한다'는 낯간지러운 단어를 입에 올렸는데, 여기서 '사실 상대는 너'라고 말할 용기는 더 남아있지 않았다. 영웅심이 바닥난 기분. 유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섰다. 아직 다음 기회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가망은 없어 보였다. 



 


 7


 좋아해, 가 안 된다면 역시 그 다음은. 


 "사랑해."


 일까? 

 아, 입에 담기엔 너무 낯간지러운 말이다. 


 제갈량을 이 세상에 있는 사람 중 가장 좋아한다고 여기면서도 유비는, 아직 그에 대한 제 감정이 열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제갈량을 많이 좋아하고 늘 옆에 있고 싶고 얼굴을 자꾸 보고 싶고 말을 걸고 싶고 닿고 싶지만 이 간질간질한 마음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어색해보였다. 처음 그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게 사랑인가' 하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사랑해"라는 말을 할 자신은 또 없었다. 

 그에게 사랑은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주위를 둘러싸는 온갖 장애물들을 헤치고 갖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버려가면서 이루어내는 것에 붙이는 용어였다. 세상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열정적인 불타는 감정. 그게 사랑이었다. 넓은 범주로 치자면 제 마음 역시 사랑이지만, 아직 이런 말을 하긴 좀 어색하다. 


 이렇게 그를 많이 좋아하면 언젠가는 나도 그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 지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를 좋아하는 마음은 어디 가서 지지 않을 텐데도.


 "사랑해..." 


 역시 이건 아니었다. 거울 속의 자신을 향해 고백을 해 본 유비는 시선을 떨구며 한숨을 쉬었다. 좋아한다는 말까지는 할 수 있었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아직 저에게는 무거웠다. 묵직하고, 어울리지 않는 말 같았다. 고백을 해보았자 거짓말을 하는 것 같고, 또, 이런 말을 듣는 제갈량도 부담스러워서 도망칠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렇지. 고백에서 누가 난데없이 사랑이라는 말을 하겠어. 어느 정도 원숙한 연인들이 아니고서야 느닷없이 눈앞에 열렬한 단어가 들이대진다면 누구라도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갈 거였다. 제갈량이 그런 반응을 보인다면 저 역시 실망할 테고, 무지 상심해서 영웅심을 더 까먹을 수도 있을 테고. 그러니....

 

 "...그냥 포기할까."


 여기까지만 할까. 유비는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비단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부족하다는 이유 만으로 도망가려는 건 아니고, 이 말을 연습하고 연습하면서 쌓아왔던 충동이 이제 폭발하려는 것이었다. 준비했던 고백들이 하나 둘 씩 꺾이면서 쌓이기 시작한 그것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연습하면서 점차 초라해지는 유비의 거울 속 모습을 보며 배가 되어, 자신감을 깎아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번까지는 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한 번 하고 그만 두나 지금 그만 두나 제갈량은 모를 거란 생각을 하니 힘이 빠진달까. 또 '포기'라는 단어를 생각하자 갑자기 시도하려고 했던 모든 것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제갈량이 좋아서 좋아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는 언제고, 이렇게 연달아 막히니 답답해져서 다 놓고 싶어졌다. 바로 그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짜내었던 용기는 바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까지 전했다가 막히면 더욱 상심할 것 같았고, 그 결과가 거절이라면 더더욱 실망할 것 같았다.

 

 그러니 여기까지만 할까. 고백을 하려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당장 바로 좋아하지 않을 순 없겠지만 차분히 배틀에만 집중하면서 수련을 하면 언젠가, 언젠가 이 마음도 접을 수 있지 않겠는가. 다른 이들의 짝사랑이 다 그렇듯이. 저 역시도. 


 "그만 둔다고요?"

 "어?"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들려 유비는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의 거울을 보니 문가에 제갈량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던 걸까, 설마 연습하는 걸 다 들은 건 아니겠지. 어째서 그의 기척을 알아채지도 못했을까. 그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고백을 생각하던 중에 당사자가 들이닥친 것도 닥친 거였지만, 제가 바보스럽게 연습하던 것을 들켰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몰려오는 쪽팔림이 장난 아니었다. 아마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있을 것이다. 

 쓸데없이 뭘 하고 있는 중이냐고 묻겠지. 그럼 뭐라고 해야 하지? 눈이 팽팽 돌았다. 머리가 새하얘진 와중에도 없는 잔머리를 쥐어 짜서, '드라마 대사를 따라하던 중이었다'는 그럴 듯한 핑계를 생각해냈는데 이런 당황한 목소리로는 변명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유비는 쩔쩔매며 제갈량과 시선을 맞추었다. 이상하게 그는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누구 마음대로 그만 둡니까?" 

 "어?"


 그럴 만도 하지, 수련은 빼먹고 여기서 이러고 있었으니. 라고 생각하던 유비는 예상 외의 대답에 그에게 다가가려던 걸음을 멈추었다. 입에서는 방금과 같은 멍청한 대답이 또 나갔다. 

 눈을 끔벅거리며 쳐다보자 제갈량은 팔짱을 끼었다. 


 "그렇게 그만 두는 게 주군에게는 쉽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어, 아니... 난.."

 "주군이 사랑을 한 번도 안 해보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쉽게 포기하실 줄은 몰랐군요. 드림 배틀은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좋아하는 사람이 배틀보다 못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


 들었어, 들었네. 역시 다 들어버렸네. 


 거울에 대고 사랑한다고 바보처럼 중얼거리던 걸 들켜 창피해진 마음과, 제가 포기하려는 것을 지적당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분함이 한 번에 일어나서 유비의 얼굴은 시뻘겋게 변했다. 감정이 복잡하게 엉켜서 뭐라고 이게 뭔지 알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냥 모르는 척 해주지. 어차피 내가 누구한테 하려고 하는 말인지도 모를 거면서. 제갈량이 어서 다른 상대에게 고백하라고 부추겨보았자 하나도 기쁘지가 않을 거였다. 그는 저에게 마음이 하나도 없다는 씁쓸함 밖에 얻는 게 더 있나. 그리고 남의 일이라고 고백을 그렇게 쉽게 말할 건 뭐야. 하다 못해 도와주겠다는 말이라도 해주던가. 유비는 불퉁한 얼굴을 하고 그를 째려보았다. 


 다만, 본인의 착각인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별로 좋지 않은 표정이던 제갈량의 얼굴에서 묘한 웃음기를 찾아내어서. 

 내가 잘못 본 건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그는 마침내 읽어냈다. 유비치고는 예리하게 그 기색을 알아차리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심술을 부리는 것 같은 목소리 속의 장난기를. 의미심장한 눈빛을.

 장족의 발전이었다. 제갈량의 기색을 이 정도로 읽어낸 것만 해도 그를 좋아하기 시작해서 열심히 관찰한 보람이 생긴 거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꼭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유비는 입을 떡 벌리며 말했다. 


 "너, 너.........알고 있었구나!"


 말의 끝은 마치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높았다. 갑자기 빽 크게 외친 꼴이 되었지만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유비가 겪고 있는, '미쳐 날뛸 것 같은' 심정에 비하면. 안 그래도 시뻘겋던 얼굴이 더욱 붉어져서, 홍당무라고 해도 믿을 얼굴로 손을 파닥거리며 그는 계속 외쳤다. 


 "알고 있었지?! 내가 너한테 고백하려는 거!!"

 "뭐..."


 세상에. 믿을 신선이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뒷통수를 맞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유비는 믿었던 우리 애가 범죄자가 된 것을 보는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부채로 얼굴을 가린 제갈량은 웃으며 말했다. 


 "주군이 그렇게 티를 내놓고 모르길 바라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요?"

 "이, 이..!"


 나쁜 녀석! 바보 멍청이 말미잘 해삼 멍게! 쏘아주고 싶은 욕은 산더미처럼 있었으나 너무 열이 난 유비의 입 안에서 제대로 된 발음을 되찾지도 못한 채 뭉게졌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게 분노인지 부끄러움인지 창피함인지는 유비도 알지 못했다. 분명한 거 지금이라도 나가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알고 있었다니! 다 알고 있었다니! 방금 사랑해, 라고 말하려던 상대가 자기란 것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지 않는가. 포기하지 말라고 한 건 저를 놀리려고 그랬음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대체 언제부터 안 거지? 그렇게 티가 났나? 나름 숨기고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아, 정말 끝이다. 너무 격렬한 감정이 폭풍처럼 머리를 점령한 가운데 유비는 제갈량에게 더 뭐라고 하는 것을 포기하고서 얼굴을 감쌌다.


 "안녕, 나 죽으러 갈래."
 "그건 안 되죠. 우린 지금부터 할 말이 많을 텐데."


 뇌의 퓨즈가 나가 멍하니 발걸음을 옮기려던 유비를 제갈량은 점잖게 잡아챘다.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려는 그의 신선에게 안타깝게도 유비는, 생애 처음으로 '어떻게 죽어야 아프지 않고 한 방에 갈 수 있을까' 같은 걸 생각하는 것으로 작은 머리통이 꽉 차 있었다. 











8

 

 "달이 아름답네요, 는 사실 주군치고는 꽤 서정적인 고백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내가 왠만하면 우는 사람이 아닌데 눈물이 나네. 

 유비는 손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채 접은 무릎에 파묻었다. 그 반응을 즐기는 듯 제갈량은 무언가를 계속 떠들었지만 저 말들을 모두 머릿속에 담는다면 저는 분명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가게 될 것이다. 그와 대화하는 게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었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말의 뜻을 조합하자면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유비가 첫 고백을 하기 전, 아니, 그 마음을 깨닫기도 전부터 알았다고.

 상대도 알았는데 왜 저는 몰랐을까? 아니, 그걸 알았으면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그런 원망도 해보다가 유비는 제갈량 쪽에서 '저기 주군이 절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게 더 어색할 거란 걸 깨닫고 원망을 멈추었다. 그 뒤에 찾아오는 것은 또 다시 약속된 창피함 뿐이라, 얼굴에 마른 세수를 하느라 손이 닳아 없어질 것 같았다. 


 완전히 제갈량의 손바닥에서 논 셈이다. 제가 고백을 할 때마다 제갈량은 그것을 알면서도 무난하게 넘겨주었는데 괜히 여러 번 시도를 해서 난처하게 만든 격이었다. 눈치도 없지. 처음 실패했을 때 그만 뒀어야 했는데. 왜 저는 제갈량이 다 알고 있다는 것도 몰랐을까, 그냥 그가 못 알아챈 거라고만 생각했다... 


 아니, 잠깐. 제갈량은 아까 다 알면서도 그만 두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그 는 이 고백이 진행되는 게, 알면서도 저를 놀리는 게 재밌었다는 뜻일까? 그것 역시 달갑지가 않았다. 저의 마음을 가지고 놀았다는 소리 아닌가. 물론 제갈량에게는 저를 받아줄 이유와 의무가 없었고, 멋대로 좋아한 건 자신이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체 했다고 생각하니 몰려오는 서러움은 있어서 진지하게 눈물이 나오려고 하기까지 했다.

 슬픔이 부끄러움을 물리쳐서 얼굴에 몰렸던 열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는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그만 할래." 


 제갈량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더 무엇인가를 시도할 이유가 없다. 마지막 고백도 하기 전에 불발된 이상, 여기서 더 할 건 없었다. 심정적으로 복잡해져서 제갈량의 시선을 마주칠 수도 없었다. 그는 시무룩하게 시선을 내렸다.


 "널 좋아했던 게 사실이고 고백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야. 됐지? 그러니까 이제 그만 놀려. 나도 그만 할테니까." 

 "그만 한다고요?"

 제갈량이 조용히 물었다. 방금 전까지 조곤조곤하게, 제가 얼마나 눈치가 없는 바보였으며 얼마나 티가 났는지 이야기하던 것보다 한 톤 낮아진 목소리였다. 유비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갈량이 한숨을 쉬었다. 


 "제가 왜 모르는 척 한 건지는 아시는 겁니까?"

 "그야...!"


 어. 그야, 뭐지? 유비는 당연하게 말을 하려다가 막혔다. 방금까지는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게 싫어서. 아니면, 좋아하는 건 별로 상관이 없는데 재밌어서, 정도라고 생각했으나. 그의 얼굴을 보니 그 답이 원하는 답은 아닌 것 같았다. 대체 뭐지? 정말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모르는 체 한 걸까? 유비는 눈을 굴렸다. 제갈량은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되었는데도 모르시는 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겪어보라고 그런 건데. "

 "..."

 "아직 알지 못하시니 어쩌겠습니까. 이번은 제가 심한 것도 있으니, 저도 그만해야죠."


 머리를 굴렸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어서, 유비는 눈을 끔벅이며 그를 보았다. 무엇을 그만한다는 건지, 뭘 알지 못하는 건지. 제가 무엇을 놓쳤기에 그가 이렇게 행동하게 한 건가를 궁금해할 즈음, 제갈량이 부채를 가슴에 가져다대고 시선을 살짝 내리면서 말했다. 


 "달이 아름답죠?" 

 "...?"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 가버렸나 싶어 재빨리 창밖을 내다 보았으나, 시간은 아직 낮이었다. 달이 떠 있지 않을 시간. 그런데 왜 그런 말을? 유비가 어리둥절해하며 다시 그를 돌아보자 그가 그렇게 행동할 줄을 알았다는 듯 제갈량은 웃고 있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유비와 시선을 맞추다가 뜸을 들이며 말했다.  


 "당신과 계속 함께 하고 싶습니다." 

 "...!"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유비는 지금 제갈량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았다. 삽시간에 얼굴이 빨개진 유비를 보며 제갈량은 작게 웃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소시지가 아니라요.

 하고, 작게 덧붙이는 것을 제갈량은 잊지 않았다. 단순히 그의 고백들을 읊고 있는 게 아니라 감정 마저도 저에게 되돌려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 가슴이 벅차기 시작했지만, 이건 정말 꿈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버릴 수도 없었다. 유비는 달아오르기 시작한 뺨의 열기를 느끼고서 어쩔 줄 모르며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했다.

 이걸, 이걸 어떻게 모르는 체 한 거지?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좋아하는 이에게서 듣는 고백의 말은 마음을 벅차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제갈량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다면, 그렇다면 제 고백에 동요하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대체 어떻게 모르는 체 한 걸까. 아니, 그보다 대체 언제부터. 유비는 망연한 기분이 되어 웃고 있는 그를 뚫어지게 보았다. 그러는 동안 제갈량의 입술은 마지막 고백, 유비가 연습했으나 하지는 못했던 주문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그것마저 들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것 같아 유비는 멈칫했으나. 


 "사랑합니다."


 입밖으로 나온 목소리를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제갈량은 입 쪽을 가렸던 부채를 떼며 미소 지었다. 


 "주군이 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하신 건 조금 실망스럽지만, 저도 모르는 척 한 게 있었으니 봐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해주셔야 합니다."
 "..ㄴ, 난.."

 "모르는 척 한 이유는... 제가, 답답한 시간이 꽤 있었기 때문에."


 그가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제가 어필을 해도 주군께서 전혀 못 알아채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억 나십니까? 안나시겠지요, 물론. 대놓고 좋아한다는 말을 드렸는데도 그걸 고백으로 못 알아들으셨으니..."

 "그, 그랬어?!"

 "네."


 전혀 몰랐다. 정말이다. 그렇다는 말은, 제갈량이 저를 좋아한 게 제가 그를 좋아한 것보다 더 오래 전이었다는 뜻이 된다. 


 "그러셨으면서 언제부터인가 저를 좋아하기 시작하셔서, 그런데도 좋아하는 걸 모르는 것 같아서, 저처럼 고생 좀 해보라고 모르는 체 했습니다. 하지만 그만 두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참기가 힘들더군요."

 "아..."

 

 그렇다면 납득은 된다. 유비는 과거의 바보 같은 자신을 혼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도.

 제 마음을 몰라주는 제갈량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을 그도 겪었다고 생각하니 원망보다는 미안함이 더 먼저 들었다. 제가 그렇게 바보였나 하는 자괴감도 몰려왔고.  

 제갈량은 그렇게 유비가 '미안해 할' 시간을 어느 정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지 흐려진 유비의 표정을 웃으며 바라보았지만, 조금 뒤 부채로 손을 탁 치는 소리를 냈다.


 "어쨌든, 저는 끝까지 말했습니다."


 깔끔한 목소리에 유비는 고개를 들었다. 미안해 할 것은 미안해 할 것이고. 들은 것은 들은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저는 지금 고백을 들었다. 좋아하던 사람에게 고백을 들은 순간이었다!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심장이 요란하게 뛰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 소리를 듣기라도 했는지 제갈량은 다시 입 꼬리를 올렸다. 


 "그러니 주군께서도 끝까지 말씀을 해주셔야죠."


 저 미소가 왜 갑자기 눈이 부신 것처럼 보이는 지 모르겠다. 제갈량을 좋아하기 시작한 다음부터도 웃는 얼굴을 좋아하긴 했는데. 왜 갑자기 더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지? 유비는 시선을 피하며 입을 오므렸다가, 조금의 여유를 찾고 말했다. 


 "아까는, 언젠가 말해달라며?"

 "지금도 언젠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이릅니까?"


 그렇게 말하는 게 너무 뻔뻔했다. 아까는 더 긴 시간을 들여도 괜찮을 것처럼 굴었던 주제에 지금 바로 말해달라니. 유비는 웃음이 터졌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모든 고백을 다 듣고 난 뒤에는 이상하게도, 아까처럼 입이 무겁지가 않았다. 

 유난히 제 말이 아닌 것 같은 그 고백도 이제는 무리없이 나올 것 같았다. 그를 향한 감정은 변화가 없는데 참 묘한 일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상대의 마음도 저를 향해있다는 걸 확인하고 난 뒤에야 할 수 있는 것일까. 쌍방 통행이라는 걸 알게 된 뒤에야 할 수 있는 마법의 말인 것일까. 그렇다면, 앞으로는 계속해서 할 수 있으리라. 유비는 그를 따라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사랑해." 















 1이 유비의 천연 철벽이었다면 이번엔 제갈량의 인공 철벽.... 

 솔직히 제갈량은 유비가 고백하면 못 알아차릴 리가 없을 것 같다. 


 새벽동안 쓰고 있어서 오탈자나 비문 많겠지만 의식의 흐름대로니 탈고는 하지 않으련다... 


Posted by 브리아나
,


제갈량이 고백할 때마다 본의아닌 철벽으로 튕겨내는 유비가 보고싶다. 





















1


  날씨가 좋던 어느 날 오후, 제갈량은 자신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


 상대가 유비라는 것이 고생길의 서막이었다. 









3


 명석한 머리 덕분에 자기 자신에 대한 파악은 빨리 끝냈다.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실전적 정의도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간 동안 서서히 정립해갔다.

 사랑은 예고도 전조도 없이 찾아오는 것이었으며, 책에서 읽은 것처럼 스며드는 물처럼 서서히 마음을 적시거나 깊은 늪처럼 빠르게 훅 빨아들이는 건 아니었다.

 그냥, 정신을 차려보니 빠져 있더라. 

 문득 깨닫고 보니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다. 부정기는 생각보다 별로 길지 않았다. 


 물론 훈련을 하다가 한심한 행동을 보이는 주군을 보면 가끔, '내가 왜 저런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지' 싶지만 그런 바보 같은 모습들도 귀여워 보이는 것을 어쩌랴. 한숨을 쉬면서 '어쩌겠어, 내가 데리고 살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 제갈량은, 누군가가 '그럼 내가 저 바보 같은 사람을 데려갈게'라고 나서면 그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거기까지는 생각보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주군을 사랑한다, 그럼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마음을 전할까, 아니면 묻어둘까? 


 대개 제 분수를 잘 알고 드림 배틀에서의 저의 역할을 잘 아는 신선이라면 주군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불충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정기도 훨씬 길었을 테고, 마음을 깨달았어도 끝까지 억누르고 숨겼겠지. 제갈량이 유비를 조금만 덜 좋아했어도 그랬을 거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유비를 너무 사랑했고, 도구적인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 자신을 가둬두기에는 너무 능력이 뛰어난 신선이었으며,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한 번 주군을 가져보기로 했다. 주군이 저를 얻기 위해 찾아왔다가 마음까지 빼앗아 갔으니 이쪽에서도 그의 마음을 요구할 자격은 되지 않겠느냐는 식의, 자기 합리화가 있음은 물론이었다.





4


 "달이 아름답네요." 

 "응, 정말 그렇지?"

 "..."


 환하게 뜬 달의 밑에서 제갈량은 침묵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어차피 주군의 수준을 잘 알지 않는가. 이 정도로 돌려 말하는 고백 같은 건 눈치채지 못할 것을 알았다.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기도 했다. 

 주군 뿐 아니라 옆에 서 있던 다른 영웅패들도-되도록이면 영웅패들이 없는 곳에서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유비가 그들을 늘 떼어놓지 않고 다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제 말을 그저 달에 대한 감탄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으니 이 실패한 고백은 책을 잘 읽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말이라 그랬으리라. 저 외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의도를 읽지 못했으니 창피하지도 않았다. 번잡스럽게 부가 설명을 시도하지 않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 

 비록 고백은 실패했지만 유비와 함께 보는 보름달은 아름다웠다. 





5


 "주군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나도!"

 "..."


 첫 고백 실패 후, 제갈량은 단어들을 신중하게 골랐다. 너무 가볍거나 무겁게 보일 수 있는 단어는 피하고 진심만을 담아 전달할 수 있는 말들은 무엇인지 고르고 골랐다. 그런 와중에 각종 연애 소설들을 섭렵하고 로맨스 드라마들을 보며 엄선한 것은 물론이었다. (유비는 제갈량이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중 제갈량이 고른 멘트는 진중한 성격의 남자 기사가 제가 섬기는 여자 영주에게 했던 말이었다. 군신 관계에서 내보이는 절절한 고백 씬이 마음에 들어, 내내 담아두었다가 조심스럽게 꺼냈는데 놀랍게도 유비는 이를 가볍게 피해갔다. 


 제가 훈련을 한답시고 신선 마법을 날려댈 때는 바보처럼 한 번도 피하지 못했으면서 왜 이런 것에서 철통 같은 방어력을 보인단 말이냐. 제갈량은 억울해졌다. 제 고민의 산물이 너무 쉽게 흘러간 것에 당황했지만, 그가 한 말을 진한 우정의 표시, 혹은 진한 충성심의 표시로 알아듣고 기뻐하는 주군에게 '방금 말은 고백입니다.'라고 말하기는 또 조금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계속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저런 유사 고백 같은 말로 악의 없이 제 가슴을 두드리는 주군의 미소를 보면, 거기에 당황을 던져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고백을 해서 마음을 뺏어오기는 커녕 도로 뺏겼으니 이번 고백도 실패였다. 연인의 모습이 아닌 지금 이대로라도 저와 계속 함께 해준다는 주군이 좋아서 이번엔 넘어가겠지만, 포기하진 않으리라. 제갈량은 눈치가 너무 좋아서 영웅패들 중 유일하게 뉘앙스를 알아 챈 것 같은 조운을 손가락으로 퉁겨주면서 다짐했다. 






6


 "주군을 좋아합니다."

 "나도!"

 "..."


 그 놈의 '나도.' 

 단언컨대 주군이 연애를 한 번도 못 해본 이유는 여자들이 그렇게 대시를 해도 주군이 알아먹지를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렇게 저와 같은 심정을 느꼈을 여자들이 몇이나 될까. 제갈량은 속으로 불평하며 얼굴을 구겼다. 화사하게 웃던 유비는 기쁘게 대답했는데도 얼굴을 찌푸리는 제갈량이 의아했는지 어리둥절해 보였지만, 영웅패들 모두는 이제 슬슬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다 알게 되어서인지 그를 동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혈압이 올랐다.

 '당신은 영웅패들보다 눈치가 없습니다, 압니까?' 그렇게 쏘아 붙이고 싶다. 솔직히 이 정도로 노골적인 말을 했으면 알아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좋아한다'는 말을 던졌을 때 그걸 사전적인 정의가 아닌 다른 좋아한다는 말로 알아듣는 사람이 세상에 대체 몇이나 되지? 이 정도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이길 자신이 없다. 명언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좋아해." "나도 좋아해, 불꽃놀이."도 아니고 이건 주어도 명백하게 나와 있는데 왜 대체 못 알아 듣는 거지?

 유비 자기 자신은 스스로를 누군가가 '성애적'인 의미로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걸까, 아니면 그가 제갈량을 상대로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걸까? (어느 쪽이든 화가 나긴 마찬가지였다.) 이렇게까지 말을 해도 이번 고백은실패다, 완전한 실패였다. 


 "왜, 왜 그래? 나 정말 제갈량 좋아해! 음, 제갈량은 강하고! 멋지고! 천재고, 대단하고! 잘생겼고, 키도 크고, 그리고 다정하고.. 요리도 잘 먹어주고! 날 잘 챙겨주잖아. 난 그런 제갈량이 정말 좋아!" 


 ... 이렇게, 또 유사 고백 비슷한 것으로 고백할 의지를 뺏겨버렸으니 정말 실패였다. 분명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화가 났는데 얼굴 표정은 주인 의사를 무시한 채 흐물흐물해지고 있었으니 최근 배운 단어를 사용하자면 '환장할' 노릇이었다. 영웅심을 뺏기는 게 이런 기분일까. 고백심을 뺏겼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고개를 젓고 비틀비틀 방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뒤에서 저를 안쓰럽게 보는 영웅패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7


 "주군을 사랑합니다."

 "어..?"


 드디어 통했나? 이 정도로 노골적인 단어를 썼으니 통했나? 

 눈을 동그랗게 뜬 유비를 본 제갈량은 속으로 긴장해서 주먹을 쥐었지만 기대가 무색하게도 유비의 눈은 금방 휘어지고 말았다. 그는 밝게 웃으면서 제갈량이 요즘 너무 싫어서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은 마법의 단어를 외쳤다. 


 "고마워! 나도!"


 시발.

 이라는 욕을 사용한다면 바로 이때 사용해야 겠지요. 이쯤 되면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주군의 머릿속에 대체 뭐가 있는지, 어떤 해맑은 세계가 펼쳐져 있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도 없는지를 궁금하게 여겨야 했다. 저는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고백을 하면서 '상대가 받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가 아니라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를 걱정해야 하는가. 틀렸다, 벽이 너무 높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짚었다. 너무 시름이 깊어서 영웅패들 중 한 명이 '불쌍해..'라고 말하는 것은 봐줄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이 정도로 눈치가 없다면 정말 자신이 없다. 일부러 이상한 분위기를 만드려고 괜히 쉬는 시간에 이상형 같은 걸 물어보거나 데이트 장소 같은 것에 대한 말을 꺼내곤 했는데, 성적 긴장감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기재되지도 않은 것 같은 주군은 그 때 나눈 대화들과 지금의 고백을 전혀 연관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천재면 뭐해, 상대가 너무 바보인 걸. 이쯤 되면 그가 사실 모든 걸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안 받아주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아직 그를 좋아하게 되기 전,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행동했던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이 사람은 그저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다. 


 '사랑'하면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게 성애적 사랑이 아닌 건가. 그런 사랑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나. 왜지? 아무리 주군에게 부족한 게 한 둘이 아니라지만 이런 쪽의 눈치까지 없을 필요는 없었잖아. 저처럼 이렇게 끈질기게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주군은 평생 연애도 못해보고 결혼도 못하고 후손도 낳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저와 이어져도 후손은 못 낳겠지만) 그러니까 그에게 사랑을 깨우쳐주기 위해서라도 더 도전하고 싶은데, 최후의 수단이 막혀서 사실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몰라, 될 대로 되라지. 살짝 불량해진 태도로 제갈량은 이제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한 주군을 흘겨보았다. 자신이 그가 사랑하는 것들 목록에 들어가 있는 건 좋았지만, 영웅패들과 같은 선상의 사랑이라면 역시 싫었다. 그보다는 더 특별해지고 싶었다. 

 





8


 "당신이랑 자고 싶어요."


 저녁을 배불리 먹고 조금 졸리운 시간. 영웅패들은 하나 둘 씩 졸기 시작했고 제갈량과 유비는 드라마를 시청 중이었다. 유비가 소파의 앞에서 제 무릎을 껴안은 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제갈량은 빈 소파에 길게 드러누울 수 있었고, 때문에 이미 전개가 예상되는, 조금 수위가 있는 로맨스 드라마에 집중하기보다는 제 앞에 앉아있는 유비의 뒷모습만을 더 열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저 드라마를 보고 배우는 게 있으면 좋으련만 나의 주군은 그러질 못하지. 졸리기 시작한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해서였을까, 욕망이 너무 솔직하게 입밖으로 튀어나가고 말았다. 


 '아... 말해버렸네. ....들었으려나.' 


 다행히 영웅패들은 모두 자고 있는 것 같았고, 주군은 미동도 없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사랑이 순수하게 시작되었다고 해도 그게 욕정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심지어 둘은 같은 지붕 아래 살고 있었고, 거의 매 순간을 붙어 다녔다. 땀에 젖어 헉헉거리는 모습, 힘들어서 눈물을 눈에 달고 있는 모습, 지쳐서 무방비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 씻고 나서 반 나체로 집을 돌아다니는 모습 등을 모두 다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짝사랑하는 상대의 그런 모습 이런 모습을 모두 보았는데도 욕망을 키워가지 않는 존재가 세상에 어디에 있겠나. 그렇다면 제갈량은 신선이 아니라 보살로 직업을 바꿔야했다. 

 생전 처음 겪는 애욕이지만 사랑에 동반되는 그 감정을 그는 순순히 받아들였고, 이따금씩 주군이 안다면 펄쩍 뛰었을 상상도 몇 번 해보게 되었다. 입 밖으로 내지만 않는다면 주군은 그의 무표정 속에서 제가 어떻게 울고 있는지를 모를 터였다. 그럴 텐데.  드라마 속의 커플이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 묘한 분위기가 된 가운데 툭 던져버린 말이 너무 노골적이었던 것이다. '좋아해요', '사랑해요'. 이런 말로 다시 도전해도 모자랄 판에 자고 싶다가 뭐야 자고 싶다가. 유비가 드라마 속에 몰두하느라 그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한 것 같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아니, 사실은 들었어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로 고백 흘림러인 유비는 분명 이번 그의 말 역시 흘려버렸을 테니까. 제대로 들었어도 '응? 졸려? 내 침대에서 같이 잘래?' 같은 말이나 했겠지. '그 나이 먹고도 혼자 못 자?' 같은 말은 안하는 사람이라 다행이긴 하지만, 이런 것에 안심하는 저도 좀 불쌍한 게 아닌지. 그렇게 생각하던 제갈량은 한숨을 쉬며 몸을 뒤척이다가. 


 미동 자세로 꼼짝하지도 않은 채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있던 유비의 귀가 잔뜩 붉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다음 수순으로 드라마가 이제 다 끝났으며 현재 하고 있는 건 광고 뿐이라는 걸 알아차린 제갈량은 모든 잠이 다 깨버리는 걸 느꼈다. 그는 긴장으로 몸을 경직시켰다. 


 "제, 제갈량...."


 조금 뒤 유비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TV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이 순간 '빠른 자살'을 생각하고 있던 제갈량으로서는 유비가 돌아봐주지 않는 게 더 다행이었다. 지금 제 얼굴은 무척 이상할 테니까.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영웅심이 부족해..?"


 이건 또 무슨 전개야. 역시 이번에도 레드 라이트입니까? 그는 다소 힘이 빠진 채로 '네? 무슨 소리시죠?' 하고 되물었지만, 얼굴이 잔뜩 붉어진 유비가 휙, 하고 그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다시 어깨를 경직시켰다. 


 "자, 자고 싶다는 건, 성관계를 의미하는 거잖아?"


 주군에게 그 정도의 성지식은 있었습니까? 그거 정말 놀랍네요. 

 어쩌면 그가 유비를 알게 된 이후 제일 놀라운 점인 것 같다. 의 얼굴을 따라 제 얼굴도 홧홧하게 붉어지는 걸 느끼며 제갈량은 당황하며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일반적으로 '자고 싶다'는 말이 그런 뜻으로 쓰이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신선인 저는 잘 자질 않으니 옆에서 함께 자고 싶다는 뜻이 아님을 알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만, 유비라면 어쩐지 다른 뜻으로 해석할 줄 알았는데 그 말만은 이렇게 곧바로 알아들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너무 놀라고 이상해서 어디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그렇습니다만..."


 큰 신경을 쓰지 마세요, 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말이 헛 나간 거라고.. 그보다 영웅심은 여기서 왜 나온. 


 "그러니까, 영웅심이 부족해서 나랑 자고 싶다는 거 아냐? 나, 읽은 적 있어! 어떤 소설 같은 데에서, 마력을 충전하기 위해서 육체 관계를 맺는다는 거. 이것도 그럴 줄은 몰랐지만... 제갈량이 이렇게 어려운 부탁을 할 정도면 정말 영웅심이 부족하다는 거니까..."


 ! 

 레드 라이트가 아니라 그린 라이트였던 건가! 제갈량은 진지한 얼굴로 생각했다. 

 유비가 제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얼굴로 열심히 말했고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는 걸로 봐서 반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지만 제갈량은, 굴러들어온 호박을 걷어찰 생각이 전혀, 전혀 없었다.


 자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저를 '사랑해서'일 거라는 생각은 죽어도 못하는 바보 같은 주군. 그가 끙끙거리며 찾아낸 원인이 예전에 읽은 어떤 말도 안되는 소설 설정이라는 것, 그 소설 설정과 영웅심이 비슷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멋대로 착각하여 사고하고 추리한 건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 어디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그렇지만 지금 솔직한 심정으로 제갈량은 그 소설의 작가에게 꽃다발이라도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그는 눈을 딱 감고 그 소설 설정을 도용하기로 했다. 


 "네. 부족합니다."


 곧 제갈량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연기력으로도 자신이 선계 최고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부족한 건 영웅심이 아니라 유비의 애정이지만. 


 "그러니까 충전해주세요." 


 로맨스 소설을 보면 일단 몸부터 통한 뒤에 마음을 통하는 전개가 여럿 있었다. 저라고 안될 이유가 없지. 어차피 정공법으로 열심히 도전했는데도 안되는 상대다. 그런 경우에는 먼저 다른 것부터 공략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부드럽게 웃으며 그는 제 말이 거짓말일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 못하는 유비가 끙끙거리는 것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유비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제갈량은, 그가 저를 절대 거부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좋아. 그럼 지금... 가자." 


 곧 유비가 홍당무 같은 얼굴로, 하지만 비장함이 감도는 얼굴로 주먹을 쥐며 말했다. 머릿속으로 팡파레를 울리며 제갈량은 일단 오늘 역사를 이루고 나면 예전에 유비가 읽었다던 책의 작가를 찾아내서 선물을 보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이었다.

















 그리고 몸부터 통한 뒤에 서서히 사랑을 일깨워주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영웅심 충전을 위해<라는 목적이라지만 상대가 저를 예쁘다, 예쁘다 하고 소중하게 만지고 키스하고 사랑하는 걸 티내는데 그쯤 되서도 못 알아챌 리는 없음. 몇 번 한 뒤에 본인이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무지하게 삽질을 하던 유비가 어느 날 잔뜩 긴장한 채 '제갈량, 혹시 나 좋아해?' 하고 물었는데 제갈량이 정말 한심하다는 얼굴을 하면서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주군?' 했으면 좋겠다. 


 그럼 유비가 너무 쉽게 대답해버린 제갈량에게 잠깐 헷갈린 채 '아니~ 그 좋아한다 말고 진짜 좋아하느냐는 말이야! 그, 연인들이 쓰는 말 같은 좋아한다는 뜻 말이야!' 하고 물으면, 그때 되서도 아직 좋아한다와 좋아한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주군에게 정말 빡친 제갈량은 '예! 아주 오래 전부터요!!'하고 소리쳐버려서 잠시 후 둘 다 얼굴 완전 빨개진 채 ~~어색한 타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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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브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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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 왜 울고 있니?" 


 머리를 반 정도만 묶어 올린 여자아이는 쭈그려 앉아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만으로 눈앞의 사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주 놀러오는 아버지의 친구였다. 아버지보다 더 젊고, 잘생기고, 친절해서 그녀를 예뻐하는. 

 연은 눈물을 쓱 문질러 닦고 고개를 저었다. 안기라는 듯 벌리는 두 팔에 자연스럽게 다가가면서. 

 '제갈량 삼촌'은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 올렸다. 


 "또 놀림 받은 거야?"

 "...네."

 

 그렇지만 속상했던 것도 사실이라 '어른들에게 걱정끼치고 싶지 않으니까 말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던 꼬마의 마음은 금세 무너졌다. 자상하게 얼러오는 목소리에 더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참고 이르자 제갈량은 그녀를 따라 눈썹을 찡그려보였다.


 "삼촌이 혼내줄까?"
 "아니요." 

 "놀리는 건 나쁜 일인데? 그 애들은 나쁜 사람들인데?"

 "그렇지는... 않아요." 


 삼촌이 제 편을 들어주는 건 좋다. 대신 혼내준다는 것도 좋았다. 연은 지난 경험으로 인해 제갈량 삼촌이 저 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꽤 무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언젠가 자신이 나쁜 사람들을 따라갈 뻔했을 때, 절 구해줬던 삼촌은 아버지에게 무섭게 화를 냈었지. 삼촌보다 더 나이도 많은 아버지는 제갈량이 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서 화를 냈어도 어찌할 바 모르고 쩔쩔매기만 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삼촌이 나서준다면, 그러면, 요즘 세상에 무슨 '비룡권'이냐며 놀리던 아이들도 입을 다물겠지만. 

 그래도 이건 제 문제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까부는 그 녀석들이 정말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었고. 그 애들은 좀 짓궂을 뿐이고, 아직 많은 걸 모를 뿐이다. 분명 납작 밟아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녀석들과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가 비룡권을 더 잘하게 되서 인정을 받으면 걔들도 더 이상 놀리지 못할 거예요. 어쩌면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넌 정말... 네 할아버지랑 똑같구나."


 집으로 다 와가는 걸음, 묵묵히 연의 말을 들으며 걷던 제갈량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나지막한 소리였지만 연은 그 뒷말을 똑똑히 듣고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는 이제 가족과 사촌, 조부와 친척의 이름을 하나 둘 씩 외워갈 시기였다. 그래서 몇 년 전에 돌아가신, 기억 속의 흐릿한 말아버지의 이름을 대었는데.


 "아니, 그 사람 말고."


 제갈량은 애매하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또 누구를 말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두 사람은 이미 대문의 안쪽까지 성큼 들어와 있었다. 제갈량을 알아본 연의 어머니가 반색하고, 안겨있는 연을 발견한 뒤 놀라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연의 작은 머리는 금방 궁금증을 잊고 어머니의 호들갑에 말려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연이 왜 도장에 나가지 않았냐며, 오늘 하루 종일 아빠와 엄마가 걱정하면서 찾아다녔다는 야단을 듣는 동안 한 걸음 물러난 제갈량은 여느 때보다는 소란스럽지만 이것 역시 일종의 평화인 이 가정을 묵묵하고 조용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에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덧씌우면서. 


  

 당신도 어렸을 때는 저랬을까요?


 제갈량은 속으로 누군가에게 물었다. 주군과 같은 눈을 가진 어린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가 묻곤 했던 질문이었다.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었지만. 


 인간의 유전자라는 것은 신비한 거라서, 부모와 자식 간에 부정할 수 없는 핏줄의 흔적을 남기지만 때로는 그 닮음이 세대를 거쳐서 전해지는 경우가 있다. 연도 그와 같은 경우였다. 이제 그의 주군 유비는 '할아버지'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관계를 표현하기에는 먼 세대가 되었지만 제갈량은 유연을 통해서 유비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 아이는 그가 봐온 유비의 아이들 중 가장 그를 많이 닮아있었다. 그러니 애정이 갈 수밖에. 

 그저 어린 아이에 불과했던 유정이 아버지가 되었다고 하면서 저에게 제 갓난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때를 기억한다. 그때 제갈량은 유정 역시도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던 갓난 아이였음을 기억했다. 그의 아버지도 그랬고, 또 그의 아버지도 그랬지.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제갈량! 내가 아빠가 됐대!"

 

  해맑은 웃음으로 가장 먼저 저에게 달려와 제 아이를 보여주었었다. 

 그때 제갈량은 인간의 아이를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아이라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것도 주군과 쏙 빼닮은 어린 아이가, 그렇게 작은 머리를 가지고서도 의지를 가진 채 손가락을 꼬물거리는 걸 보는 건 무척 신기했다. 그래서 그 아이를 한동안 정신없이 내려다보며 눈을 떼지 못했던 것도 생생한데, 아이는 빠르게 커버렸다. 그리고 생각보다 아버지를 많이 닮지 않았지. 외모는 그렇다 쳐도 성격은 그 아버지에 비하면 많이 나약했었다. 

 그런 아들의 밑에서 태어난 손자 역시도 그랬고. 

 

 같은 상황에 처해도 유비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그들에게는 실망스러웠지만 유비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제 아들과 손자를 사랑했으니까, 제갈량도 그들을 지켜봐주었다. 아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게 옳을지도 모른다. 영원을 사는 삶에서 의미가 있는 일이란 이제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마음을 늦게 깨닫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들 하지만 제갈량은, 눈을 감은 유비가 행복한 하얀 재가 되고 난 뒤에야 마음을 깨달은 것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이 떠난 뒤에야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 건 미치도록 서글픈 일이었으나. 만약 그가 살아있을 때 저의 사랑을 알았더라면 그는 체면이란 걸 모두 벗어던지고 구질구질하게 매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럼 다정한 유비는 진짜 자신의 감정이 어떻든 간에 일단 받아주고 보았겠지. 그는 저를 많이 아꼈으니까. 그렇게 주군과 연인 관계가 되었다면 전 무척 행복했겠지만, 지금도 가정을 하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미어질 만큼 안타까운 꿈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랬다면 대를 이어서 저와 계속 함께 해줄 이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주군과 저는 후손을 남길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지금의 이 상황이 낫다. 식사를 마친 뒤 잘 먹었다며 씩씩하게 제 방으로 들어가는 유연의 모습을 보며 제갈량은 생각했다. 짧은 순간 사랑을 한 뒤, 영원을 살아가며 그 사랑을 추억하는 것보다 그리움으로만 남게 되었다 해도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이 옆에 영영 남아있는 게 더 좋을 거라고. 

 분명 저는 유씨 성을 가진 아이들에게서 제 주군을 보고 있었고, 그들에게 가진 애정의 기반은 이제 세상에 없는 주군에 대한 사랑. 질기고 애끓는 이 연모 때문에 고통받는 생을 살고 있다 할 지라도 그의 흔적들은 옆에 남아있으니까. 

 연처럼, 그를 똑같이 닮은 아이들이 또 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이 한참 늦어버린 순간에 속으로만 고백하고 있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는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유비는 제갈량보다 한 발 앞서서 그를 좋아했지만 그가 저에게 아무런 마음이 없다고 생각해서 마음을 접고 결혼했을 거라는 설정. 

 제갈량은 유비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마음이 되게 이상했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었음. 첫 아이를 낳고 기뻐하는 걸 볼 때도, 부인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며 입맞춤을 할 때도 따끔따끔한 질투를 느꼈지만 내내 알지 못하다가 유비가 저에게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은 뒤, 그가 화장되고 나서야 더 이상 이 세상에서 그를 다시 볼 수 없음을 실감하고 그제야 깊은 마음을 깨달았을 것 같다. 


 시간이 오래 가면 사랑도 무뎌진다지만 늘 젊고 영원한 신선은 그 감정 역시 쉬이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 계속해서 유비가 남긴 아이들의 옆을 계속 맴돌며 지켜주고, 가족의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다. 가장이 되면 제갈량의 정체(신선)이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에 유연도 나중에 가서 제갈량의 정체를 알게 되고 그때야 그가 아버지보다 젊은(것처럼 보이는)데도 반말하는 이유를 알게 될 듯. 

 가차없는 독설을 날리던 성격도 유비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 앞에서는 좀 누그러지지 않았을까.. 


 +제목은 GUMI- 지구 최후의 고백을 에서 따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타ㅁ 버전으로 첨부. 

https://www.youtube.com/watch?v=oPa09a6o0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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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들은 이상하네요. 정말 섬세하고, 정교하고, 부드럽고... 이런 것에도..."

 "... 간지러워."
 "느끼고."


 제갈량의 두 손가락이 손바닥을 두드리듯 문지르자 유비는 키득 웃었다. 가볍다면 가벼운 스킨십이지만 몇 번 몸을 섞은 뒤 기대어서 쉬는 중에 닿는 손길이라 평소보다 반응하는 정도는 컸다. 제갈량은 웃는 유비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 걸 물끄러미 관찰했다. 제 어떤 손길에 주군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느 정도면 더 민감해지는지, 어디를 좋아하는지를 알아가는 것은 요즘 들어 생긴 그의 새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제가 그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가는 것 역시도. 


 "제갈량도 좋아하면서."


 슬슬 졸리기 시작했던지 유비는 눈을 비비며 웅얼거렸다. 차마 노골적인 단어를 내뱉지 못하는 게 유비다웠고, 그런 유비 앞에서 굳이 정확한 단어를 써가며 그에게 부끄러운 얼굴을 하게 만드는 것이 제갈량의 또다른 악취미 중 하나였지만, 오늘은 봐주기로 했다. 이번엔 그를 꽤 많이 괴롭혔기 때문에 양심이라는 것의 손을 들어준 결과였다. 


 "네, 좋아합니다. 이상하지요, 전 인간도 아닌데."


 대신 그는 팔을 길게 뻗었다. '상황 종료, 이제는 자도 된다.'를 알리는 신호에 유비는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게 그 팔에 머리를 괴었다. 곧 그는 금방 잠에 빠질 것이다. 


 "당신이랑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그 사람을 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 때문에 흥분하고. 이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프로그램인 자신도 이런 것을 할 수 있었다니. 유비를 만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일이었다. 저의 존재를 한낱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왔던 그는 사랑을 알게 되고 그에 의해 주체적으로 움직이게 됨으로서, 인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적어도 지금은 제가 인간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기분이었다.

 사랑의 감정은 커다란 미지의 세계를 열었다. 지식을 탐식하길 좋아하는 제갈량에게는 앞으로 정복해나갈 여지가 많은 분야. 그 곳에 발을 디디기 위해서는 유비가 꼭 필요하다, 는 건 사실 핑계고 유비가 없다면 모두 의미가 없는 지식들이었다. 그가 없다면 사람을 어떻게 만져주고 어떻게 안아주고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 그렇지만 그가 있다는 조건에 한해서 그런 지식들은, 알아가는 것이 아주 즐거웠다. 저는 선계 최고의 신선답게 습득이 아주 빠른 편이었고. 


 "그러니까 앞으로 주군은 체력을 더 키우시는 게 어떨까요."

 "... 체력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이 이상을 하면 당연히 지치거든? 봐주라, 나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아..."


 농담삼아 한 말에 유비는 식겁했다가 웃는 제갈량의 얼굴에 농담임을 확인하고 다시 스르르 풀어졌다. 반은 진심이었지만 그래도 '죽는다'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아 제갈량은 말없이 그의 입을 막아주었다.

 굿나잇 키스를 마지막으로 유비는 무거운 눈꺼풀을 완전히 닫고 잠에 빠져들었다. 아직 잘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의 자세로 한동안 누워있고 싶었던 제갈량은 규칙적으로 들리는 숨소리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연인의 사랑으로 충만해진 인간은 참 대단한 행복을 느끼는구나. 인간이란 참 대단한  거네. 잠들기 전 그는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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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히삼/제윱] idiot

레히삼 2017. 9. 30. 01:08

제갈유비을 위한 문구는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입니다. 연성해주세요.

https://kr.shindanmaker.com/486818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운 게 아닐까? 너의 그 주군을 좋아한 게 아니었다면 그 사람 때문에 외롭진 않았겠지.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이 널 무시하든 말든 넌 평화로웠을 거야."

 "... 지금 너한테 논리적인 답 요구한 거 아니거든? 이건 그냥 시야. 난 시를 쓴 거라고."

 "아, 미안."


 유비가 짓궂게 웃었다. 대답과 다르게 미안함이라곤 전혀 없는 목소리였고, 그게 아니라도 제갈량은 그가 미안해하지 않고 있다는 걸 잘 알았다. 그는 그런 성격이니까. 

 그럼에도 더 크게 화를 낼 수 없는 건 장난스러운 웃음이라도 그가 웃으면, 제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에. 

 그는 고개를 돌리고 다시 묵묵히 쓰던 글을 썼다. 


[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


 "그런데 말이야, 정말 그 사람이 그렇게 사랑스러웠나봐, 네가 날 그렇게 보는 걸 보면?"

 "..."

 "내가 진짜가 아니라는 건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으면서, 나한테 화도 못 내잖아. 성격 엄청 나쁜 네가."


 이번에도 방해를 받았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좀 큰 거였다. 덕분에 제갈량은 오늘 안에 뒷구절 쓰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날을 세워 노려보자 유비는 다시 한 번 두 손을 들어올리며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미안하다는 제스쳐를 했지만, 이번에는 기억 속의 그의 '주군'답지 않았기 때문에 제갈량은 화를 낼 수 있었다. 


 "정신 사나우니까 나가. 보기 싫어."


 그래도 다른 이에게처럼 혓바닥에 가시돋친 말을 던질 순 없었지만 축객령은 축객령.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유비는 가뿐한 걸음으로 자리에서 나갔다. 혼자가 되었을 때 제갈량은 의자에 푹 눌러 앉으며 마른 세수를 했다. 정곡을 찌른 유비의 말이 다시금 머릿속을 맴도는 탓이었다. 진짜가 아니란 걸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으면서. 진짜가 아니란 걸. 진짜. 몇 십년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주군. 


 그래, 잘 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방금 나간 저 이는 진짜 유비일 수가 없었다. 진짜 주군이었다면 저에게 그렇게 말하는 일 따위 없었을 것이다. "글씨도 잘 쓰네, 대단해 제갈량!" 이라거나 "시가 정말 아름답네, 네가 쓴 거야?" 라거나, "그런데 누구에게 쓰는 말이야?" 같은 말을 했겠지.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상상만으로도 귓가에 찾아오는 그의 목소리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가 제 눈앞에 다시 나타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걸까?


 제가 그처럼 온화한 성품이 못 되어서 그럴까? 공을 들여 그의 외모를 본딴 이를 만들 순 있어도 그의 성격과 똑같은 이를 만들 수는 없었다. 외모는 유비를 닮았어도 성격은 저 본성의 것 그대로였다. 제 혼을 나눠주는 것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역시 하늘 아래 '유비'라는 사람이 또 태어나게 할 수는 없는가보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이렇게 확인을 하게 되면 하게 될 수록 그는 외로워졌다. 소중한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고, 자신은 그가 없는 세계를 쭉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지옥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잠시 후에 다시 제가 가짜 유비를 불러들일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생각하던 주군과 전혀 다를 것을 알면서도 만들기를 시도한 이유 역시 외로움 때문이었으니까. 그는 진짜 주군이 아니었지만 그 움직이는 외양을 보여주는 것으로 제갈량이 계속 살아가게 할 동기 부여 정도는 해주었다. 이제는 하루하루 지쳐가는 제갈량에게 남은 건 그것 밖에는 없었다.

 정말로 그것밖에는.  

 





Posted by 브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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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유비 의 연성 문장

당신의 옆에서 영원한 친구로 남아도 좋으니 내치지 말아주세요.

https://kr.shindanmaker.com/679163










 "그럼 친구로 영원히 남지 않을 생각이었어?!"


 도리어 그 말에 유비가 충격을 받은 듯 물어왔다. 이럴 때면 그와 자신의 생각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어 숨이 막히지만, 그래도 그의 사고 방식에 점점 익숙해진 탓인지 상처는 덜 받았다. 제갈량은 잠깐 숨을 멈추었다가 웃으며 대꾸했다. 


 "네,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다시금 큰 충격을 받았는지 유비의 입이 마구 뻐끔거렸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해'인지, '가차 없어'인지, '싫어'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뜻은 전해진다. 입술 사이로 앓듯이 흘러나온 불분명한 발음은 어찌 되었건 유비가 저와의 인연을 놓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하는 것이리라. 제갈량은 일단 그것으로 안도하기로 했다. 

 

 친구라는 형식의 인연으로 만족하기엔 제 욕심이 너무 크지만 그것을 감내한다면 그는 계속 저를 옆자리에 두는 걸 허락할 거라고. 그러니 여기서 더 나가지 말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부풀어 올라 입밖으로 내뱉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삼키며 그는 이번에 허락없이 주인 밖으로 튀어나가 유비를 놀라게 한 마음을 숨겼다. "당신의 옆에서 영원한 친구로 남아도 좋으니 내치지 말아주세요."라니, 반절만 진실이라는 것을 그의 주군은 끝끝내 모를 것이다.

 


Posted by 브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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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히삼 삼군주로 아이돌 보고싶다. 셋이 한 유닛인거.. 

(왕윤조조왕윤/제갈유비/손책주유 기반) 


조조: 

 본명이 태오인데 데뷔명이 조조. 유닛 컨셉이 삼국지라서 개명한 건데 본명이 더 예쁘다는 팬들이 많음. 친한 사람들은(왕윤이나 초선) 태오라고 부르는데 멤버들은 조조라고 부름. 약간 조조는 어디 인터뷰에서 동료들에 대해서 물어보면 '비즈니스 관계죠.'하고 딱 잘라 말할 것 같은 느낌이 있어... 

 세 명 중에서 나이 제일 많아서 리더를 하고 있는데 이 시대의 차가운 도시남+유능한 리더 느낌일듯. 그래서 대개 비글 두마리의 견주라는 느낌으로 소비된다. 손책과 유비가 너무 하이텐션이라서 조조가 있으면 적당히 온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멤버들한테 은근히 가차없는데 휘말릴 때는 또 휘말려서 고생하게 되는 그런 느낌일듯 ㅋㅋㅋ그려놓은 것 같은 쿨 계열이군 

팬싸에서도 되게 무뚝뚝하게 툭툭 말 던질 것 같은데 그게 냉정하고 차가운 게 아니라 무심한 걱정? 같은 거라서 (내일이 시험인데 여기 왔다는 애한테 '우리가 네 인생 책임져 주지 않으니까 얼른 가서 공부 해.' 같은 말이라던가...) 그거에 꽂힌 팬들이 있을 듯. 

혼자서 다해먹어도 될 정도로 못하는게 없어서 실력파 아이돌이라 불리고 솔로 앨범도 냈을듯. 특히 감미로운 발라드 계열과 카리스마 뿜뿜하는 데드섹시한 컨셉에서 먹히고 발라드 같은 경우는 스스로 작곡도 하기 시작할듯 

 군무에서도 칼같이 각 딱딱 잡혀있고 목소리도 좋은데다가 고음도 잘 내서 메인 보컬에 애드리브는 다 조조 담당이고 심지어 연기도 잘할 것 같음. 배우 상 아이돌이라는 제목으로 커뮤니티에 많이 사진 올라올 것 같고 정극 같은 데에서 천천히 커리어 쌓다가 가끔은 서브 남주 역할 정도까지 맡아서 팬층 나이가 확 늘어나기도 하고 그럴 듯. 이렇게 모두 잘하는 조조가 서툰 게 있었으니 바로 예능이었던 것이다.. 농담도 잘 못하는 데다가 (아재개그는 좀 할 듯.) 리액션도 거의 안해서.. 본인은 좀 서툴고 뻘쭘하다고 느끼는데 팬들은 그걸 오히려 더 좋아할 것 같고. 

 그러던 와중에 아어가에 한 번 출연한 적 있는데 거기에서 엄청 데레데레한 반응 보여줘서 팬층 빵 터져나갔으면 좋겠다. 같은 드라마를 했던 왕윤 배우(7년차 선배)가 아어가에 딸 초선이랑 같이 출연중이었는데 그 초선이 보러 온 오빠 컨셉으로 등장한 건데 초선이 앞에서는 대사 하는 것마다 꽃톤이 붙여져 있는 거... 그래서 <아이한테는 자상한 남자> 같은 느낌으로 막 짤 돌아다니고 그랬는데 사실 아이한테 다정한 것도 있지만 초선이가 아이라서가 아니라 왕윤의 딸이라서 다정한 게 더 많았던 것이다..

 왕윤과 조조는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적 있는 사이. 인데 그 인연은 사실 좀 더 김. (주로 조조 쪽에서.) 금수저인 조조가 연옌이 된 이유가 왕윤을 동경해서였고, 그래서 드라마 하기 전에 <조조, 왕윤 선배와 같은 작품에 출연하다니 성덕이 된 기분> 같은 기사 떴었고 막 왕윤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되게 각잡고 열심히 장점에 대해 답하는 짤도 뜨고 그랬는데 아어가 때 아예 아이를 사이에 둔 투샷 돌고 그러니까 원래도 음지에 알음알음 있었던 알페스 팬덤이 대 폭발해버리고 양지에서도 은근히 나오고 (엠씨들이 가끔씩 둘이 사귄다면서요? 하고 장난으로 물어보는 식으로) 멤버들도 알게 된ㅋㅋㅋ그런 커플링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 팬싸 때 팬들도 장난으로 물어보고 (실제라면 이건 비매너입니다) 조조도 아무렇지 않게 '맞아 나 선배 좋아해'(중의적) 같이 대답하고 그래서 거의 공식 되어버리고 그랬으면.. 

 커플까지는 못가도 삼군주의 리더 조조가 왕윤 배우 빠돌이라는 건 되게 유명한 사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손책은 삼군주의 비글1을 담당하고 있는데 노래는 주로 랩 쪽을 하지만 재능이 폭발하는 건 춤 쪽이었으면 좋겠다. 조조도 안무에서 빠지진 않지만 그건 주어진 안무를 잘하는 거라면 손책은 데뷔 연차가 쌓이면 자기가 안무를 만들고 짜서 애들한테 알려주고 하게 되었으면 좋겠음. 

 그 외에 몸 쓰는 것도 되게 잘하고 약간 바보 같은 느낌에 리액션이 좋아서 예능에서 대활약하는 멤버가 됐으면 좋겠다.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다가 나중에는 반고정까지 되는데 주로 제작진이 준 미션을 보고 이게 뭐지 하고 어리둥절 당황하면서 삽질하는 역할 ㅋㅋㅋ가끔 예능신이 따라줘서 엄청나게 웃긴 명장면 같은 걸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태생 아이돌이라서 그런 장면에서도 은근히 잘생겨서 어라 뭐지? 웃긴데 설레..<<같은 느낌으로 입덕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신체 능력은 또 좋아서 그렇게 헤매다가 프로그램 우승하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음 

 상식 퀴즈 같은 거 하면 유비랑 같이 졸라리 많이 틀리는데 (조조: 우승) 가끔 찍어맞추기로 맞추기도 하고.. 일단 유비보다는 잘안다(ㅋㅋㅋㅋㅋㅋㅋㅋ)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중인 패널 주유(배우 출신)랑 장난삼아 커플링으로 많이 엮이기도 하는데 프로그램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막 엮어주면 에이 장난치지 마요 ㅋㅋㅋ 하는 식으로 대꾸하는데 은근히 주유 많이 챙겨주고 그런 모습을 보여서 정말 망붕이 늘어나고... 사귀었으면 좋겠다 하는 사람들도 꽤 있고.. 월요커플처럼 막 그런 이름 붙여서 커플 취급 받는 기믹 생겼으면 좋겠음. 물론 에이스에 똑똑하고 강한 주유가 손책을 잡고 사는 느낌이지만.  


 유비는 보통 아이돌 그룹에서 리더나 그 다음으로 나이 많은 사람이 엄마 취급 받는 것과 달리, 막내인데 엄마 같은 취급을 받을 것이다 ㅋㅋㅋ평소에는 넘나 바보인데다가 비글이고(손책보다는 덜함) 막 팬들한테 '보증 잘못 서줄 것 같음' 소리 듣는 막내인데 숙소 공개하는 다큐 같은 거에서 요리 존잘이고;; 집안 살림 혼자서 착실하게 뚝딱 해내는 모습 보여서 패널들한테 막 맏며느리감이란 소리 듣고 조신한 남자나까 신부한테 사랑받겠다는 소리 듣고 그랬으면 좋겠다. 요리 프로그램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 같은 데에서 먹방 찍을 때 주로 '요리하는 쪽'으로 많이 등장할 듯. 그 외에 리액션이 진짜 좋아서 런닝맨 같은 데에도 자주 나오는데 얘가 넘 순진하고 바보라서 우승은 한 번도 못한다... 대신 손책과 같이 덤앤더머 씬을 만들어낸다 

 노래는 그래도 그럭저럭하고 춤도 나쁘지 않게 추는데 연기는 못할 삘. 캐릭터가 자기와 같은 성격의 캐릭터라면 그래도 좀 해낸다, 하지만 연기쪽으로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팬들도, 유비도 안할 듯.  

 팬싸에서 대응이 제일 좋아서 팬들이 막 조조한테는 무서워서 시도도 못한 아재개그도 유비한테는 치고 ㅋㅋㅋ유비는 막 까르르 웃을 것 같고.. 유비가 정색하면 그건 정말 재미없는 개그다<< 이런 소리 나올듯. 

 순진한 망충미, 씹덕상 이런 말로 소비되는데 가끔 입 다물고 각잡고 제복 입고 그러면 꽤 괜찮아보여서 눈에 깍지를 쓰게 되는 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비의 중심을 이루는 건 망충미. 

 프로그램을 하다가 만났던 여아이돌 그룹의 멤버 서서랑 성격이 비슷해서 친해지게 되는데 (서서도 사고뭉치, 바보 느낌으로 컨셉이 소비되서 둘이 같이 붙어있으면 으앙 여기서 이거 어떻게 하지? 8ㅁ8 하면서 버둥거리는 두 사람을 볼 수 있다.) 그 인연으로 서로 앨범이 발매될 때마다 서로 걸 사서 SNS에서 인증해주는 게 전통이 되었음. 그 때문에 서서랑 유비 스캔들도 은근히 이야기가 나왔는데 유비랑 서서 둘 다 넘 순진하고 망충한 이미지로 소비되서 그런 이야기가 나와도 진지하게 불거진 적은 없을듯. 그리고 그 다음에 나타난 제갈량과의 커플링이 너무 커져서 유비 팬들 팬덤을 반 정도는 집어 삼켰음. 

 제갈량은 서서랑 같은 소속사에, 연습생 때부터 친구였던 앤데 솔로 아이돌이자 싱어송 라이터일듯. 얘가 실력파인데다가 못하는 게 없어가지고 단번에 인지도가 확 높아짐. 예능에도 가끔 나오는데 얜 성격이 막 그렇긴() 하지만 무뚝뚝한 건 아니어서 독설의 제왕, 얄미운 천재, 이런 느낌으로 소비되던 와중에 우연히 우결에 출연하게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상대가 유비였으면 ㅋㅋㅋㅋㅋ 

 성격이 전혀 다른 사람 둘을 붙여놓는 걸 제작진이 재밌게 생각한 거지. 처음에 제갈량이 유비 진짜 마음에 안들어하는 건 빤히 보이는 수준이었고 ㅋㅋㅋㅋ 두 사람과 같은 친구인 서서가 신혼집에 놀러와서 사이 좋게 해주려는 에피도 있고 그랬는데 어째선지 에피가 진행되고 진행될수록 제갈량 태도가 확 바뀌어가서 처음에는 약간 시트콤 보는 느낌으로 팝콘 먹으면서 보던 팬들도 약간, 뭐야 쟤네 진짜 사랑하는 거 아니야..?< 제갈량이 웃었어 합성 아니야..?< 1화 때랑 반응 완전 다른데 저 사람 누구야..?<이런 느낌이 되었으면 ㅋㅋㅋ

 그 때문에 알페스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가 우결이 끝나고 두 사람이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되어서 (그때 포옹씬이 대박을 쳤고 제갈량이 친 대사가 되게 유명해져서 팬픽에 자주 쓰임) 다시 줄어들었는데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제갈량이 유비 콘서트에 간다던가 숙소에 놀러간다던가 둘이 같이 영화를 보러갔다던가 하는 소식이 들려오니까 다시 고개를 들다가 제갈량이 내 뮤즈는 유비라는 식으로 SNS에 글올려서 빵 터져버리고... 같이 예능에 출연했을 때 제갈량이 하는 행동 보고 조조랑 손책도 음? 뭔가 이상한데.. 하는 느낌 받을 정도인데 유비만 몰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중에 열애설 뜨고 결혼설 뜨고 슈스 커플 되시길... 예쁜 사랑하시길.. 난 제갈량이 셋쇼마루 동상 세우는 게 넘나 좋다




Posted by 브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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